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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 읽기 11. '당당한 행복'이란...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0. 9.

2019년 10월 9일 저녁... 한글날...

 

“하느님, 저를 지켜주소서. 당신께 피신합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거룩한 이들과 위대한 이들에게 저의 온 마음이 쏠립니다. 다른 신들을 붙좇는 자들의 고통이 크기에 저는 그 신들에게 피의 제사를 바치지 않으며, 그 이름들을 제 입술에 올리지 않습니다.” 시편 15(15) 1-4절

 

하느님에게 피한다는 것, 참다운 존재에게 피한다는 것, 참다운 행복에게 피한다는 것, 그 품에 있다는 것,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돈을 신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 권력과 명예를 신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 그렇게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이기며 살아가려는 모든 욕심, 돈과 권력을 신으로 여기며 살아가려는 그 모든 욕심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그 이름을 입술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성당을 다니고 교회를 다니고 절을 다녀도 결국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권력을 원한다. 그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자랑하며 그 자랑을 듣는 이들의 앞에서 무엇인가 이긴 듯한 그 느낌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 즐김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부러워하는 이들 앞에서 이상한 승리감을 즐기는 것, 그래서 더 열심히 자신이 얼마나 돈과 권력의 신에 가까이 있는지 자랑한다. 그리고 즐긴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툰다. 그것으로 누군가는 힘겨워하고 누군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돈이란 그런 것이다. 돈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아프게 하는 이들은 그 죽음과 아픔은 바로 눈앞에서 보지 않는다. 그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아프고 힘들어가는 이들의 고난을 거름으로 자기 쾌락을 즐기기 바쁠 뿐이다. 그것을 자랑하기 바쁠 뿐이다. 보지 않는다. 죄책감 없이 아프게 하고 죽이면서 약자니 어쩔 수 없다 이야기한다. 나는 강자니 나의 길을 가는 것이고, 너는 약자니 모든 것은 너의 탓이라며, 가해의 모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린다. 그리고 그것을 답이란 듯이 모두 이야기한다.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부러워한다. 부끄러움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이 지옥이다. 

 

자기 아집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아집과 아집이 만나 싸우고 자랑하고 그 사이 힘없는 이들은 죽어가고, 아파하고, 강한 이들끼리 싸우다 또 누군가는 죽어가고 아파하고 더 강한 이는 이 모든 것이 약한 놈들은 약해서 그리고 자신은 강해서라며 부끄러움 대신 자랑을 한다. 바로 이런 것이 일상인 곳이 지옥이다.

 

하느님의 품에 안겨 이 지옥을 피한 이들은 그저 하느님의 품에서 이 비극에 고개 돌리고 살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돌아보아야 한다. 자기 학벌을 자랑삼아 남을 아래로 보지 않았는지, 자기 소유를 자랑삼아 남을 아래로 보지 않았는지, 자기 권력을 자랑삼아 남을 아래로 보지 않았는지, 정말 하느님의 품에 있는 이들은 바로 이 모든 것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이 땅 우리 역사의 거룩하고 위대한 이들의 희생을 돌아보자. 이 지옥이 싫다 외친 그 외침을 돌아보자. 그들의 말과 삶을 아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된다. 전태일을 안다고 끝이 아니다. 자기 말이 되고 삶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입으로 돈과 권력을 신 삼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도 말아야 한다. 

 

반성하고 다시 반성하자. 그 반성의 깊이만큼 우린 하느님의 품에 더 꼭 안길 자격을 가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반성의 깊이만큼 우리의 말이 되고 삶이 될 때, 우린 더 따스한 하느님의 품을 느낄지 모른다. 세상 이런 저런 조롱에 흔들리지 않고 이런 저런 유혹이 아파하지 않으면 당당히 행복하게 될지 모른다. 당당하게 행복한 삶... 그 시작은 바로 깊은 반성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돌보는 이 없이 자라는 길가의 꽃... 하지만 외롭지 않다. 흙이 내어주고 이슬이 내어주고 햇님이 내어주고 바람이 내어주고 그렇게 더불어 있다. 홀로 있지 않고 더불어 있다. 더불어 그리고 당당하게... 자기 몫의 존재를 즐기며 그렇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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