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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유대칠 암브로시오의 성경 읽기 12. 살아서 지옥을 살며 지옥을 만드는 이.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0. 13.

2019년 10월 13일 일요일 저녁 

 

“제 마음을 신뢰하는 자는 우둔한 자이지만, 지혜 속에 걷는 이는 구원을 받는다. 가난한 자에게 주는 이는 모자람이 없지만, 못 본 체 하는 자는 많은 저주를 받는다. 악인들이 일어서면 사람들이 술어 버리고 그들이 멸망하면 의인들이 많아진다.” 잠언 28장 26-28절

 

자기만을 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듣고자 하는 말만 듣는다. 호의의 말도 나쁜 마음으로 들으면 나쁜 것이 되고 응원의 말도 나쁜 마음으로 들으면 조롱으로 들린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그 답답한 틀 속에서 지옥을 살아간다. 하지만 귀를 열어 희망을 듣지 않는다. 응원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랑과 신뢰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세상은 사악하고 그것이 원래 세상이나 나 역시 적당히 사악하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세상이 원래 그러니 말이다. 그런 이들은 우둔한 자들이다. 지혜로운 이는 귀를 열어 아픈 이의 아픔을 듣고 기쁜 이의 기쁨을 듣는다. 그리고 함께 더불어 아프고 기뻐한다. 너의 그 아픔과 기쁨을 외롭게 두지 않는 나에게 너 역시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나와 너 사이의 더불어 있음이 나와 너의 든든한 쉼터이고 참된 나와 너로 있는 마땅히 있어야 할 그곳이다. 그렇게 더불어 우리로 살아가는 이는 지혜롭다. 그 더불어 살아감의 지혜 가운데 그는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지금 이곳에서도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초자연적인 무엇이 아닌 나의 앞에 너의 존재에게서 다가오는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악(惡)’이란 존재하는 것이 이름이 아니라, ‘부재(不在)’의 이름이다. 마땅히 있어야할 곳에 있지 않는 것, 그것이 부재이고, 그것이 악이고 나쁨이다. 가난한 이의 아픔은 원래 있어야할 곳이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아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모두의 것으로 하느님이 내어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누군가 이것은 나의 것이라 소유를 고집하게 되면, 그 있어야할 곳에 그것이 있지 못하고, 그것을 누려야 할 이가 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그는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이, 누군가를 이기며 행복하려는 이, 이 모든 이들은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한다. 더불어 살아감의 기쁨,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 성당과 교회 그리고 절을 오래 다녀도 그저 누군가의 아픔을 거름으로 웃는 서글픈 그 무엇일 뿐이다. 악인으로 있는 나라면 나는 너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봐도 보이지 않는다. 기쁨을 보면 시기하고 질투한다. 이런 이들은 살아서도 지옥을 살아가는 이들이고 지옥을 만드는 이들이다.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스스로 누구와의 함께 있지 못하는 지옥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악인들이 사라지고 모두가 서로 더불어 웃으며 우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의인의 살아가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세상이라면 살아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의지하는 천국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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