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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버려진 열심이고 싶지 않습니다. (일간유대칠 2021 02 19)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2. 20.

철학과가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30대를 시작하는 박사 수료생 유대칠 의도하지 않게 대학 밖으로 버려졌습니다. 두 발로 걸어간 것도 아니고 그냥 버려졌습니다. 철학과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시대의 판단은 대학이란 공간이 철학과를 버리는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아주 솔직한 행위입니다. 필요 없는데 남 눈치를 보며, 학과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의 교수이지만. 교수 충원 없는 이상한 비참함보다는 그냥 필요 없으니 버린다는 것이 참 솔직한 '짓'입니다. 그 행위에 유대칠은 버려진 것이고요. 농담 삼아하는 말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농담이 아닌 말... 유대칠은 쓰레기입니다. 그 말은 그때 나온 이상한 진지함의 표현입니다. 버려졌으니 말입니다.

갑자기 나와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이사를 하고 새벽 시간 힘겨운 몸에 잠시 일어나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20대는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남들 눈엔 공부 못하는 놈이 대학이라도 들어가려고 간 것이 지방대 철학과입니다. 그러나 유대칠은 목사가 되기 위해 우선 철학 공부를 하겠다고 들어간 것이 철학과입니다. 하여간 들어가서 죽으라 철학을 '독학' 했습니다. 당시 대학 도서관 마지막 퇴실 알림 방송을 듣고 강제적으로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1시간 스쿨버스를 타고 새벽 1-2시에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1시간 스쿨버스를 타고 8시에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한 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읽어갔습니다. 그냥 철학 부스에 있는 책들은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반야심경 해설에서 시작한 독서는 졸업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대학이란 공간에 무척 실망하기도 했고, 실망한 만큼 도서관이라도 마음대로 이용하고 싶은 생각에 조금은 독기로 독서를 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철학은 이해를 하던 하지 못해도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하이데거 책이 도서관에 잘 보여서 정도라고 할까요. 하여간 그렇습니다. 하이데거가 누군지도 모르고 읽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으니 말입니다. 이런저런 선입견 없이 그냥 도서관에 있어서 읽었습니다. 이어서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의 책도 이해를 하든 하지 못하든 당시 나온 것까지는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냥 죽으라 앉아서 읽었습니다. 사실 이해는 거의 하지 못합니다. 엉성합니다. 라틴어 공부도 대학 1학년 12월 성탄 이브날 시작합니다. 성탄 이브 케이크를 나누며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분명합니다. 오늘 그 기억이 갑자기 선명이 떠오릅니다. 라틴어 공부 모임은 허창덕 신부님 책을 반 정도 했을까... 흩어지고 혼자서 독학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독학이라 항상 어설프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좋은 선생님 아래에서 배운 이들에 비하여 저의 어설픔은 그저 항상 초라하고 초라합니다. 독일어도 라틴어를 공부하기 시작할 무렵 시작했고요. 독일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잘 배웠지만 철학과 대학원생들 사이 볼 수 있든 독일로 어학연수를 하거나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돈도 없었고요. 그렇게 열심히 20을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20살 21살 22살... 유대칠은 대견합니다. 나름 치열했고 나름 열심히 었습니다. 

당시 한 연구실에서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 그곳에서 3년 정도를 공부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징역 살듯이 공부해서 친구들이 놀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깝고 식사 시간도 아까운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20대를 보냈는데 막상 30대가 시작하자 철학과는 문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버려진 것입니다. 누구도 철학과의 버려짐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칠이 쓰레기가 되었음을 직감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버려진 열심'으로 살기 시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식적으로 너는 응원할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저의 30대는 응원하는 이 없이 지내게 됩니다. 왜 철학과가 쓰레기가 되었는데 막상 다른 철학과의 사람들은 슬퍼하지 않았을까요? 슬픔의 연대도 없고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 버려졌다는 것 정도... 그렇게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다들 연구 프로젝트를 하기 바빠서 연구비 얻기 바빠서 지방대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은 것인지... 너무 치열하게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간다고 그만 보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철학과는 버려졌습니다. 유대칠의 열심도 쓰레기가 된 시기이고요. 어쩌면 지금 지방대가 소멸 시대의 또 다른 작은 시작이 어쩌면 그 무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지방 사립대 출신을 지잡대라며 조롱하는 시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없어져야 하는 시대... 때마침 인구도 줄고... 하여간 그렇게 사라지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증조가 철학과의 버려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30대는 혼자 공부했습니다. 소속도 없이 그냥 혼자였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저는 저의 힘겨움에 참 많은 가해자들이 있는데 누구 하나 사과하는 법이 없습니다. 가해자 모두가 폭력 사실 자체를 모르니까요. 하여간 버려지고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학과가 사라지니 선배니 후배니 하는 개념들도 사라져 갔습니다. 그냥 혼자였습니다. 응원을 하는 이가 없는 것은 20대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더 열심히 응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같이 응원한다 말을 하며 조롱하곤 했지요. 응원하다면서 왜 그러고 사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익숙해져 간 것이 30대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아주 친해도 응원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응원 없는 열심에 익숙해진 것은 30대였습니다. 철학하는 유대칠보다는 아르바이트생 유대칠이었습니다. 영어 과외 선생... 수학 과외 선생... 논술 과외 선생... 당장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길거리에 서서 전단지를 나누거나 벽보를 붙이고 다니거나 시간당 돈을 받고 문서 수발을 하기도 했고 어느 대학원생이 읽어 싶어 하는 논문을 번역해주는 일을 하기도 했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요즘 뭐해'라는 말이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사실 은근히 대학에서 강의하고 유학을 가고 하는 것이 부러웠나 봅니다. 학회를 가는 것도 마음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다들 대학에서 강의하고 논문 쓰고 치열한데 나는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논문 읽고 공부하고 알바 중간 시간에 편의점에 컵라면 먹으며 논문 적고 그랬던 시간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사실 그렇게 적은 글을 학술지에 투고하곤 했습니다. 학회 선생님들은 저와 너무나 다른 사람 같아서 마주하고 있으면 한 없이 제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참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마음은 없지 않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만큼이나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알바를 하는 시간만큼 죽으러 철학 공부를 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30대의 나는 불쌍합니다. 지하철 범어역 구석에서 한참을 울기도 했습니다. 왜 울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어느 학생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무척이나 독한 말로 하는 한 학부모의 말이 상처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혼자 있으면 자꾸 서글프고 힘들어서 될 수 있으면 혼자 있지 않으려 했던 시간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막말로 혼자 있으면 나쁜 생각 슬픈 생각만 가득하니 말입니다. 나의 치열함은 무슨 소용일까... 쓸모가 있는 치열함인가... 30대... 무능한 가장으로 살기도 힘들고 무능한 연구 노동자로 살기는 창피한 그러한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에겐 당당하지 못한 무능한 아빠이고 아내에게도 무력하고 초라한 남편일지 모릅니다. 어딘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내가 부끄러운 사람이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지금 딸아이가 철학자 유대칠을 자랑스러워해서 참 행복합니다. 그러나 30대는 한없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절망감이 일상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대학 강의는 왠지 선생 같아 보이는 시간이라... 왠지 철학자 같아 보이는 시간이라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강의했습니다. 저의 <신성한 모독자>와 <대한민국 철학사>는 모두 그 시절 저의 강의록이 기본입니다. 

40대...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저의 이름으로 책도 계약하고 책도 내고 신문과 주간지에도 소개되고 방송에도 나와보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저를 응원해주신 분들이 저와 더불어 있어 주었기 때문이라 확신합니다. 아직 저는 부끄럽고 창피한 수준의 사람입니다. 아직 저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도 없고 저를 선생이라 생각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더불어 있어 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저는 내일 지구가 망하던 망하지 않던 상관없이 오늘 그들과 더불어 나눌 사과 한 그루를 심어가려 합니다. 30대 중반부터 준비하던 저의 '더불어 철학'이나 '더불어 신학'이 조금씩 틀을 잡아가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철학과가 죽었지만 아무도 슬퍼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이곳 대학이란 공간 속엔 처음부터 철학이 없어서 일지 모르겠습니다. 철학과가 버려지고 죽었지만 아무도 슬퍼하지 않은 것은 철학의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더욱더 복잡한 일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합니다. 이런저런 순서 없는 글인데... 결국 그 말입니다. 전 여전히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한가 봅니다. 욕심쟁이죠. 20대와 30대 저는 응원 없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칠의 40대... 대한민국에 14명 정도는 저를 응원하는 분들이 있다 생각합니다. 14라는 수는 그냥... ㅎㅎ... 하여간 또 그리고 여전히 항상 치열해봅니다. 책도 강의도 많이 응원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쓸모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저도 정말 정말 치열하게 저의 길에서 후회 없이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나눌 사과나무를 말입니다. 

저와 더불어 있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다시 깊은 고마움을 전하며 동시에 앞으로 더욱더 단단히 저와 더불어 있어 주시면 저는 더욱더 신나게 사과나무를 심어 보겠습니다. 

유대칠 

2021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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