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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낙수효과 따위 믿지마세요! <모든 형제들> 읽기 3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3. 11.

한때 많은 이들이, 아니 지금도 많은 이들이 낙수 효과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부자가 아주 많이 부자가 되면 그 부자의 주머니에게 흘러나오는 것이 많아져서 가난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이죠.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부자들의 욕심은 끝이 있을까요? 정말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있을까요? 말이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욕심의 끝은 없습니다. 이미 고대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교부들 역시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채울 수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많은 권력을 가져도 권력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공기업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말 그대로 공적 가치를 위하여 일해야 하는 기업의 사람들이 사적 이익에 더 집중했다는 사실에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들이 적은 월급을 가지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아닙니다. 국민 일반의 관점에선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어디 그들뿐인가요.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등등 이미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슬픈 욕심에 많은 이들이 아파한 적이 제법 많이 있음을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이와 같이 끝이 없습니다.

수능 시험 하나 잘 쳐서 혹은 입사 시험 하나 잘 쳐서 혹은 이런저런 시험 하나 잘 쳐서 그것도 아니면 이미 부잣집에서 태어나 모두를 무시하며 자신들의 배만 불려도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정말 좋은 세상,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 세상은 꼴찌도 일등도 다 같이 더불어 웃는 세상입니다. 꼴찌라도 불행해야 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일등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야 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모든 형제들>의 한 구절을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봅시다.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 강자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면서 취약하고 빈곤한 지역의 정체성을 해체시켜 이들을 더욱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이처럼 ‘분열 통치’하려는 초국적 기업들에 의해 정치가 약화되고 있다”(12항)

자본주의 사회, 자본이 힘이고, 그 힘이 자유를 누리는 세상에서 취약하고 빈곤한 이들은 더욱더 힘들어지고 더욱더 가진 자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슬픈 일이죠. 의존을 통한 하나 됨은 결국 분열을 만들어 냅니다. 이 시대 온갖 부조리의 주체는 잘 살아가고 그 부조리에 아파하는 이들은 힘들어지기만 합니다. 그 힘겨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하여 더욱더 가진 자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사회는 더욱더 분열하게 됩니다.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의 지배자가 되고, 가진 자가 가난한 자의 지배자가 되고, 이것이 당연시되는 세상, 과연 이러한 세상이 당연한 세상일까요. 이것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아름답다 하신 세상일까요? 아닙니다. 분열과 저마다의 홀로 있음만이 가득한 이곳은 지옥입니다.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는 불평등을 흡수하지도 않고, 사회관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폭력의 근간이 된다”(168항)

낙수효과는 거짓임을 <모든 형제들>은 분명히 선언하고 잇습니다. 그것은 불평등은 사라지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더 깊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새로운 폭력의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기적입니다. 작은 것이지만 수많은 이들의 배고픔과 더불어 있고자 할 때, 기적은 여기저기 크지 않은 소유이지만 서로 나누어가지는 더불어 있음으로 이어져 갈 것입니다. 많은 이를 먹이기에 부족하지만 한 아이가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 놓으면,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떡 다섯과 물고리 두 마리, 아니 어쩌면 떡 하나와 물고기 하나를 내어놓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적은 가짐이지만 모이고 모이면 그 많은 이들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남겨진 것이 종교의 몫일지 모릅니다. 나눔으로 이끄는 것이 신앙이고 그렇게 많은 민중들이 먹고 남은 것, 어쩌면 바로 그것이 종교의 몫일지 모릅니다. 아픔이 없어질 대로 없어지고 남은 그 자리에 종교는 다음의 나눔을 이끌기 위해 12 광주리를 먹어야겠지요. 

작은 나눔이 결국 전체를 먹이고 전체를 더불어 있게 합니다. 자기 내어줌이 결국 전체의 희망이란 말이며, 전체를 전체로 하나 되게 하는 희망의 첫걸음입니다. 낙수효과, 나의 아픔을 모르는 어느 부자의 주머니에게 욕심이 차고 마서 흘러나오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의존하지 말고 작은 나눔, 그 자기 내어줌의 더불어 있음에 희망을 걸어봅시다. 

그때 이 사회의 경제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워 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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