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집도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그것도 영하 20도의 차가운 속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가 말 그대로 추워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여러 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폭력을 일상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을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기는 한 것일까요?
<모든 형제들>의 한 구절을 읽어봅니다.
“사람들은 이민자가 인간이 아니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겠지만, 의사결정과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다른 사람보다 쓸모없고 중요하지 않은, 인간답지 않은 존재로 간주함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 자기 신앙보다 정치적 선택을 우선시하여 이러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갖는 일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39항)
사람이지만 그들은 사람다운 존재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나쁜 일입니다. 어떤 변명으로도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만이 우월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아집 가득한 수구적 욕심과 민족우월주의의 흐름 속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당부가 무시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이미 한국인과 결혼하여 이 땅의 국적을 가진 이 땅의 사람이지만 피부색과 그들이 믿는 종교와 관습 그리고 그들의 출신을 두고 차별한다는 것은 신앙을 떠나 그저 사람으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 땅의 국적이 없어도 이 땅을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결코 용서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면서 별 일 없이 이러한 악의 일상성에 익숙해 버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많은 이들이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이들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을 우리와 구분하여 우리의 밖에 있는 사람으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온전한 시민권’의 개념을 세워 ‘소수민족’이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표현에는 고립과 열등감의 싹이 담겨있다.”(131항)
그들을 홀로 있게 하는 시선은 우리 사회를 분열된 공간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 가정을 힘들게 하고 그 가정에서 자라는 미래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소수민족이니 이주민이란 구별의 언어가 아닌 그를 우리 안에 참된 우리로 안아주어야 합니다. 예수의 품에 그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토록 사랑한 이들 안에 그들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라도 서로 다른 문화라고 서로 다른 피부색에 서로 다른 출신이라도 그들도 하느님의 품에 있습니다. 그들을 차별하는 어떤 것도 그리스도교적이지 않습니다.
과거 강요된 선교로 약한 지구 상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한 그리스도교이지만 그것은 잘못된 과거이며 다시는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과거입니다. 모두가 다 평등할 때, 누구도 홀로 있음의 외로움 속에서 아파하지 않을 때 하느님은 바로 그곳에 우리 모두와 더불어 있을 것입니다. 성적으로 그들을 학대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그들을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 사회에서 저마다 일꾼으로 당당한 한몫을 하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과연 우리 자신은 그들 앞에서 나와 다른 그 이웃 앞에서 그 이웃을 내 몸을 내가 사랑하든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였는지 돌아봅니다. 만일 그랬다면 차별 속에서 외롭게 영하 20도의 차가움 속에 그가 죽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차가움 속에서 죽어간 이의 그 죽음에서 우린 우리 자신의 지금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우린 그토록 차가운 존재입니다. 우린 영하 20도의 존재입니다. 그들을 품으로 남이 아닌 우리 가운데 나 아닌 나로 안아주지 못한 영하 20도의 차가운 존재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아봅시다. 그리고 항상 기억하고 돌아봅시다. 나는 혹시 그들을 남으로 두고 그들에게 영하 20도의 존재인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들을 홀로 있게 하는 우리는 우리 자신도 홀로 있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들과 더불어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도 더불어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돌아봅시다. 그 차가운 죽음 앞에서 바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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