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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그냥 거룩해 보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형제들> 읽기 10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3. 18.

설령 그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아프고 힘겨운 이를 도와야 한다는 마음속 울림은 양심의 소리이며 내 안에 울리는 하느님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어렵고 힘겨운 신 존재 증명보다 어쩌면 신자들이 그 소리에 충실하여 산다면 하느님을 모르는 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누군지도 모르는 이라도 힘들고 어려우면 그들의 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있는 것이라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면 말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돈을 우선시하는 자본이 왕인 세상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다가서는 이러한 삶은 정말 기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돌아와 보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힘들고 아픈 이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더불어 있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사실 자신이 홀로 천국에 가기 위함인 이들이 많지요.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보면 그들의 게으름과 무지를 탓하며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말입니다. 

대가 없는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장사이고 거래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하란 말이 아닙니다. 아프고 힘든 이라면 그들의 편에서 그들과 더불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설령 그 힘겨움으로 자신에게 어떤 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삶을 종교인도 살지 않곤 합니다. 신자들도 살지 않곤 합니다. 

"모른 채 지나친 이들에게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들이 종교인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하느님의 제사를 돕는 이들이었다. 사제와 레위인이었기 때문이다."(74항)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힘겨운 누군가를 그냥 지나친 이들은 종교인이었습니다. 하느님 제사를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제이고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의 편에서 생각해 봅시다. 아프고 힘든 이가 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제법 심하게 아파하고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그 옆을 그냥 지나갑니다. 신부도 목사도 수도자도 전도사도 모두 그냥 지나갑니다. 그들에게 그 아프고 힘든 이는 그냥 남일뿐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숭배한다고 해서 그분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74항)

하느님을 믿고 숭배한다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현실 속에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종교인도 있고, 부유함을 추구하는 종교인도 있으며, 화려함과 거대함을 추구하는 종교인도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은 그 권력과 부유함과 화려함 또 거대함에 그 종교임을 대단하다 할지 모릅니다. 하느님과 더불어 있다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단함 가운데 아프고 가난한 이가 더불어 있지 않다면, 그 가운데 하느님은 분명 더불어 있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의 이기심과 아집만이 가득히 채워져 있을지 모릅니다. 성스러움이란 위선의 옷을 입고 말입니다. 

"때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실천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74항).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사랑의 삶을 산다는 것, 무엇인가를 바라지 않고 내어준다는 것, 그런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하나를 이루며 서로 다르지만 다름 그대로 하나를 이루며 산다는 것, 이렇게 많은 종교인들과 신자들이 있지만 그리 흔해 보이진 않습니다. 

더불어 있지 않은 종교인과 달리 자신을 멸시하는 민족에게 다가가 도움을 준 이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유다인은 경멸을 받은 그가 아프고 힘든 이의 벗이 되어 그와 더불어 있었던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른가 봅니다. 보이는 경건과 신성함이 거짓이기도 합니다. 정말 보아야 하는 것을 보면 이 처럼 스스로도 힘들지만 자신과 무관한 남을 남이 아닌 우리 가운데 나 아닌 나라며 안아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성당을 다니고 교회를 다녀도 아프고 힘겨운 이들의 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있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더 큰 욕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욕심에 홀로 천국에 가려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지금 이곳, 바로 여기에 차별 없이 모두가 더불어 하나를 이루며 살아가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려는 애씀일 것입니다. 아무리 성직자이고 목회자이고 오랜 시간 성당과 교회를 다녀도 더불어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 이기와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저 성스러워 보일 뿐, 그 속은 다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도 나는 나를 돌아봅니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기 위해 말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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