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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하느님 처럼 시끄럽게... (함석헌과 더불어 신학 1)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7. 20.

“세속의 일을 맡았다는 정치에서는 도리어 민(民)의 세기인 것이 청천백일 같아가는데, 정신계를 맡았다는 종교에서는 거꾸로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계급주의·지배주의의 성직제를 고집하며 그것이 자랑이나 되는 듯이 알고 있다. 가을이 되도록 올챙이 꼬리가 못 떨어진 것은 부끄러움이요, 고통이지 자랑할 만한 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함석헌)

과거 가톨릭 교회의 한 신부와 함석헌 선생 사이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지옥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모른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이 충직한 가톨릭 사제에겐 그리 좋은 소리로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개신교회에서도 모두가 함석헌 선생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극히 일부만이 그를 좋아하고 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그는 무교주의자입니다. 그는 하느님과 나 사이 어떤 것도 서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나의 만남 바로 그것이 그의 종교입니다. 그 사이에 사제가 집전하는 성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의 설교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성 종교의 신앙에서 그릇된 선민사상과 충성주의의 관념을 빼버려야 한다. 그것은 자기중심주의의 변태밖에 되는 것이 없다.” (함석헌)

어쩌면 하느님과 나 사이에 종교적으로 이런저런 장치들과 사람들과 조직들이 놓여있다면 어느 순간 그 장치와 사람 그리고 조직이 신앙의 내용이 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없고 말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는 마음이 신앙이고 그 만남이 종교인데 어느 순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수단들로 나열된 것이 신앙의 전부가 되고 서로 그 수단으로 다투면서 종교를 나누게 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수단으로의 이론과 계시 그리고 성사만이 자신들을 하느님을 만나게 하고 더 궁극적으로는 천국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종교와 다른 수단은 모두 지옥으로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수단 중심의 종교는 선민사상,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생각과 천국에 가기 위한 수단에 종속되어 버리는 충성주의에 빠져 버릴지 모릅니다. 함석헌 선생은 이것이 싫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가면 되는데, 지금 여기에서 바로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이런저런 조직과 이론에 사로잡혀 그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가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그런 생각은 자기가 믿는 수단 중심의 자기중심주의, 즉 홀로 있음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고생 고생하여 신앙하는데 더불어 천국에 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종교가 종교다. 교도(敎徒) 있는 것은 종교 아니다. 참 종교는 한 사람의 신자를 가질 뿐이다. 교도 많을수록 가짜 종교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해라.” (함석헌)

참 종교는 똑똑한 사람이 믿는 종교도 아니고 감성적인 사람이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냥 나와 하느님이 직접 만나 더불어 있는 바로 그러한 종교가 참된 종교라 함석헌 선생은 확신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나의 관념을 하나씩 지우고 아집 넘어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쉼 없이 고민하고 궁리하며 하느님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니 말입니다. 자신의 치열한 생각도 어느 순간 안주하는 무엇이 되어 버릴지 모릅니다. 무한한 하느님을 향하여 유한한 나는 열심히 고민하며 치열하게 하느님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 고민으로 내 답을 만들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만든 내 답을 내 스스로 다시 파기하고 또 파기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기 힘드니 그냥 하나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안주합니다. 감성적으로도 쉬는 것도 종교가 아니고 편한 곳에 가서 쉬려는 것도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나오는 이, 스스로 폭발하는 이, 그러기 위해 스스로 맞서고 뻗대고 걸러내는 이다. 스스로 노여워하는 이다. 영원의 미완성이다.” (함석헌)

어쩌면 하느님 역시 나와 만나기 위해 치열하게 궁리하고 화내며 노력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유한한 내가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기 힘든 미완성의 존재라면 무한한 하느님 역시 온전히 나를 향하여 다가와 더불어 있으려는 미완성일지 모릅니다. 하느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치열하게 시끄럽게 싸우며 혹은 웃으며 살아가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느님이 그리 있으시 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완전한 존재, 어떤 움직임도 없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존재, 그런 존재로 여기고 있다면 하느님 처럼 살기 위해 이 세상 시끄러운 것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조용히 살아있는 돌이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냥 저는 치열하게 때론 울고 웃으며 화내고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때론 욕도 망설임 없이 토해내며 천하고 천하다는 이들에게 내려가 혹은 속되가 속되다는 이들에게 내려가 그들 모두와 더불어 높이 없이 그 천하다 혹은 속되다는 우리네 폭력 앞에 더불어 울며 싸우는 것이 성스러운 신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당을 다닌다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느님을 직접 만나 답을 궁리하는 시간은 없이 그저 기계가 작동하듯이 신앙생활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내 고민으로 이룬 내 삶이 어쩌면 하느님을 만나도 조금 더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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