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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제발 욕심 좀 두고 더불어 삽시다. (요한 1서 1장 1절과 함께... )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2. 8. 11.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요한 1서 1장 1절

아주 신비한 이야기로 들을 거 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 없어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은 모두 더불어 잘 살자는 겁니다. 그 뜻은 우주의 시작부터 내려온 우주의 참 모습니다. 자연의 수많은 존재가 자신을 내어주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자기 홀로 더 위대하다며 다른 존재를 무시하고 멸종시키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 가장 위대하다면서 그런 나쁜 짓을 하죠. 사람만이 더불어 잘 살아야한다는 그 뜻을 따르지 않는 겁니다.

굳이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이들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우린 역사 속에 그리고 일상 속에 더불어 잘 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놓은 이들을 봅니다. 전태일이 그랬습니다. 우리 역사 속 전태일 말입니다. 그는 자기 하나 잘 되자 불이 된 게 아닙니다. 더불어 모두 잘 살자며 불이 된 겁니다. 이 땅 가득한 이기심을 태우기 위해 불이 된 겁니다. 우린 그 불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린 여전히 우리네 이기심으로 살아갑니다.

변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더불어 살기 위해 내 것을 내어놓을 때가 올지 모릅니다. 더불어 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받을 수 있습니다. 준다 하여 고개 들지 말고 받는다 하여 고개 숙이지 마세요.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그 말씀, 그 뜻에 따르는 겁니다. 큰 나무가 크다 하여 위대한 것이 아니고, 그 큰 만큼 많은 새와 벌레의 먹이가 되고 죽어 그 큼만큼 많은 것의 거름이 됩니다. 결국 사라지며 내어 줍니다. 자연이 이렇습니다. 그렇게 더불어 있습니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더불어 삽시다.

유대칠 

2022년 8월 11일 새벽에 씀

[기복이 아닌 일상 속 누구에게나 뜻으로 다가갈 신학을 궁리해 봅니다. 한구절 한구절... 시간이 날때마다 적어봅니다. 읽어주시고 함께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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