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불어신학

평신도란 고생하며 사는 이들이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3. 11. 12.

평신도주일...

평신도... 그들 삶의 자리는 교회도 수도원도 아닌 일상이다.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가 녹아들어 아프고 괴로운 그 자리가 그들 삶의 자리다. 도대체 나의 잘못도 아닌 데 나에게 화를 내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정말 죽을힘으로 노력했지만 잔인하게 무시당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선한 마음의 응원도 조롱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쁘고 사악한 놈이 더 잘 그리고 더 오래 산다. 그저 당하기만 하고 산 이들의 마지막은 초라하기만 하다. 그렇게 슬프고 아픈 곳이 바로 내가 사는 바로 이곳이다. 평신도인 나의 자리는 바로 여기다.

바로 여기에서 나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신부와 목사의 이야기는 매우 관념적이라 대부분 나의 삶에 다가오지 않을 때가 많다. 내 삶 안으로 다가오지 못한 내 삶 밖에서 구경하며 얻은 지식에 근거하니 어쩔 수 없다. 아니 그것이 그들의 한계다. 그들은 내 삶의 답을 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답을 찾아 나아가라 그 답으로 온 삶으로 살아라 응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이상 특별한 존재는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내 삶의 답, 이 서글프고 아프고 괴로운 세상에서 어찌 살아야 할지 결단하며 살아가야 할 주체는 바로 나다. 지금 여기 철저하게 이 순간에 집중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야 할 그 주체는 나다. 복음서의 이야기, 그 오랜 과거의 이야기는 지금 나의 일상과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나에게 던져진 질문, 그 질문을 잡고 수많은 변주를 하며 부끄럽지 않은 나의 삶을 만들어갈 책임은 나에게 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살아갈 때 어쩌면 참된 평신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을 이론이나 관상으로 만나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신을 일상의 벗으로 때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며 우리의 답을 만들어 쉼 없이 진화해 나아가야 할 삶, 그 삶을 살아가야 할 이들은 바로 평신도다.

가톨릭교회의 평신도주일이다. 나는 평신도다. 평신도라 불리든 그냥 신도라 불리든 하여간 나는 사제도 아니고 수도자도 아닌 보통의 아무개다. 결국 평신도란 그 아무개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고 고민하고 그 고민을 삶이 되게 하는 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나는 지금 고생 중이다.

 

유대칠 씀

2023년 11월 12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