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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유대칠의 신학, 신학은 삶의 방식이다. 삶이 되어야 한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3. 11. 12.

서양의 중세와 근대, 그렇게 신에 관하여 다양한 고민을 하고 논증을 하고 풀이를 했다. 중세만 그런 게 아니다. 근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 방식이 중세와 다를 뿐 결국 철학 논쟁은 대부분 신을 향했다. 그 신이 어떤 식이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이론으로 논증된 신학의 신, 또 철학의 신은 결국 사람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우리 삶에 다가오지 못했다. 오히려 신을 제외하고 진행된 학문은 빠르게 흘러갔다. 19세기 이후 그리고 20세기 이후 학문의 진보, 그 빠르기는 대단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신을 향하여 논쟁하지 않는다. 신이 철학에서 그리고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빠져 버렸고 이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의 신학이 이루려는 건 신을 논증하거나 신을 이론 속에서 파악해 다가가려는 게 아니다. 언어의 밖, 그 신은 이론으로 어차피 들어올 수 없다. 그것이 유비적이든 일의적이든 조금도 다를 것 없이 말이다. 단지 그 신을 이론이 아닌 우리 삶에서 살아보고자 하는 거다. 이론이 아닌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이를 위한 이론, 바로 그것이 내 신학의 기본이다. 즉 신학 역시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이란 말이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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