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과 더불어 있는 철학
“그랬기 때문에 내 역사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차차 늘어가서 1961년에 그 셋째 판을 내려할 때에 나는 크게 수정을 하기로 하였다. 고난의 역사라는 근본 생각은 변할 리가 없지만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 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철학 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타나는 그 형식은 그 민족을 따라 그 시대를 따라 가지가지요, 그 밝히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알짬이 되는 참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 곁들여서 내 태도를 결정하게 한 것이 세계주의와 과학주의다. 세계는 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국가주의를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요, 독단적인 태도를 내버리고 어디까지 이 성을 존중하는 자리에 서서 과학과 종교가 충돌되는 듯한 때는 과학의 편을 들어 그것을 살려주고 신앙은 그 과학 위에 서서도 성립이 될 수 있는 보다 높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2002), 17쪽.
해방 이후, 대구는 피바람이 불었다. 우리 군경의 손에 우리 민중이 죽어갔다. 이후 그 잔혹한 살인의 시간은 한 참 이어졌다. 그 많은 죽음은 슬프게도 누구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학자의 글에선 보이지만, 우리네 기억엔 없다. 10여 명의 어린이가 우리 경찰의 총에 살해당한 슬픈 곳은 지금 자전거 길이 되어 있고,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는지 모를 아픈 곳은 그저 앞산 빨래터라는 이름으로 또 학산공원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죽음의 자리가 아니라, 과거 빨래하던 곳 혹은 학원이 되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경산코발트 광산의 이름 모를 이들의 유해는 오랜 시간 외롭게 버려져 있었고, 가창골의 유해 발굴은 이제야 느릿느릿 꿈틀거릴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네 눈 밖이다. 아직 이들의 죽음은 외롭다. 홀로 있다. 우리 삶에 이들의 죽음은 아직 남의 일이다. 외롭고 슬픈 곳에 버려진 남 말이다.
누군가는 우리네 어두운 역사를 굳이 왜 기억해 내려하는가 따지며 묻는다. 나는 답한다. 그게 우리가 우리 되는 길이다. 누군가의 쓸모에 잔인하게 죽어간 이들, 그 억울한 죽음을 남의 죽음으로 두는 건 우리로 있는 이들이 할 짓이 아니다. 정말 우리라면 이들의 눈물, 그 억울함은 품어야 한다. 우리의 억울함이고 우리의 눈물로 품어야 한다. 그 억울한 옛 눈물도 나의 눈물이라며 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된다. 제대로 더불어 있는 우리가 된다. 국가주의! 그땐 것을 버려라. 민중, 이 땅의 씨알 없이 씨알이 왠 말이냐! 버려진 씨알은 버려져서도 거름이 된다. 그게 씨알이다. 죽어도 우리를 가운데 녹아드는 게 씨알이란 말이다. 그렇게 홀로 좋음을 누리며 쓸모에 따라 버리고 죽이는 건 우리가 아니다. 성경을 든 자들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 제주에서 그들이 한 일을 봐라! 대구라도 다르지 않다! 성경을 손에 들고 하느님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옆에 죽어가는 이들의 아픔을 보이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이 진정 그러한 것이란 말인가! 나는 그런 하느님의 그런 뜻은 버리겠다. 씨알 속에 씨알의 눈물이 되어 흐르는 뜻의 역사, 그 역사 속에 쉬지 않고 고난의 길을 가는 씨알에게서 나는 이 땅에 드러난 하느님을 마주한다.
차가운 학문의 눈으로 나는 씨알에게 달려가 더불어 있으려 한다. 따스한 하느님의 뜻이 되어 씨알에게 달려가 더불어 있으려 한다. 독단의 감옥에서 자신이 세상 최고라는 듯이 소리치는 거짓에서 벗어나 씨알의 눈물에서 참 진리를 만나고 그 진리를 따라 더불어 살려한다.. 이게 내 철학, 내 생각의 애씀이 내 삶으로 이루고자 하는 거다.
유대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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