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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 102호실

스피노자, 나를 안다는 것과 신을 안다는 것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1. 20.

스피노자, 나를 안다는 것과 신을 안다는 것.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에 의하면, 사람은 사고 실체와 연장을 가진 실체가 어떻게 든 결합한 것이었다. 물론 실체적 본질에서 보자면 나는 정신이지만 몸을 아예 무시해버릴 순 없다. 여기에서 신은 이 두 실체에 근거를 주는 세번째 고차원의 실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정신 및 신체는 실체가 아니다. 데카르트도 인정하듯이 실체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자기 근거를 가지는 존재다. 그런데 엄격하게 말하면 그런 존재는 신뿐이다.

그렇기에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 세상 단 하나의 자기 충족적이고 확실한 실체는 신 하나 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신에 의존하여 있다. 신의 덕에 있단 말이다. 우리 사람의 정신도 또한 신체도 다른 모든 것들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신의 존재에 자기 있음의 근거를 두고 있다. 신은 무한하다. 그런 무한한 신의 특성 하나 하나의 표현이 이 세상 가운데 개체들이거나 그것에 대해 인식이거나이다.

데카르트는 시람의 마음 작용과 그 대상으로하고있는 사물을 완전히 다른 실체로 서로 구분 한 후, 그 상호 관계에 대해 어려운 논의를 전개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생각은 달랐다. 스피노자는 생각하는 실체와 연장을 가진 실체는 원래 동일한 실체이며, 그것이 때로는 이 속성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저 속성으로 나타날뿐이다. 서로 존재론적으로 다르지 않다. 신이란 동일한 실체로 있는 것들이다.

신이라는 하나의 유일한 실체 가운데 정신과 신체는 사람이라는 개별적인 장소에서 정신으로 또 신체로 인식되는 것일 뿐이다.

신 가운데, 신에 있어서는 모든 관념과 모든 대상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 관념과 대상의 연쇄는 무한히 펼쳐져있다. 즉, 무한한 지적 공간이 있다. 그것이 신의 모습이다.

사람이 뭔가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이 끝없는 지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매우 국소적인 지각의 일부다. 즉 사람을 포함한 개별적인 존재는 신 활동의 국소적인 것으로 나타나 있기에, 신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에 편재해 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이 자신으로부터 발생한 것을 선으로 자신의 외부에서 온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악이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외부 조건으로 생각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사람이 국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전체성 속에서 세계에는 외부이라는 것이 없다. 따라서 악이 일어날 여지는 없다. 신의 편에서 모든 것은 선일 뿐이다.

스피노자의 이론은 사람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것을 신의 속성 일부가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에 서있다 할 수 있다. 그러니 그의 이런 입장은 범신론이다. 그리고 그의 철학에서 신은 너무나 강한 힘을 가지며 다루어진다.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사랑은 어떤 종교인보다 강했다. 직업 종교인이나 특정 종교에 매몰된 이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철학자로 그는 철저하게 신에 대하여 사유하며 다가선 인물이다. 그에게 신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밖에 있는 어떤 신앙 대상이 아니다. 신은 우리가 속한 있음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에게 정신의 최고선은 신에 대한 지식이며 최고의 미덕은 신을 알기위한 것이다. 이것은 나의 밖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알고자 함이다.

유대칠 씀
2019 11 20 광주에서 대구 가는 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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