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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 고난당하시는 것이 진정 필요했겠습니까?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2. 8.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하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리 고난당하시는 것이 진정 필요했겠습니까?

네, 꼭 필요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첫째, 우리의 죄를 기워 갚는 치료제로서

둘째, 우리 행위의 모범으로 필요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Collatio 6 super "Credo in Deum")

 

나는 이리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그 힘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느님이 바로 여기 우리를 위해 그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해서 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사랑해서 입니다. 사랑하니 그를 위하여 그 힘든 고난을 기꺼이 받아신 것입니다. 아니 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스스로 결단하시고 우리 아픔을 품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 두지 않고 자신의 고난을 값으로 안아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우린 그분의 사랑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의 사랑을 이 땅에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범으로 그분의 그 모습을 삼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습은 참 아픕니다. 근거 없는 비난, 익명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잔혹한 폭력으로 누군가를 아프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생각이 다르면 그저 욕하고 멀리 합니다. 나쁜 사람이라 비난합니다. 갈라서려 합니다. 흩어지려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 아픈 고난으로 기워 주신 이 상처를 우리는 다시 자해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아픔도 멀리하고 청년의 아픔도 멀리하고 아픈 이의 아픔도 멀리하고 이웃의 아픔도 멀리하고 그렇게 멀리 멀리 우리로 부터 멀리, 하나 됨으로 부터 멀리, 하느님 품으로 부터 멀리 멀리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이제 우리 삶으로 그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예수의 그 사랑을 모범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19, 12, 07

 

집 부근 어느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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