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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 바로 거기에 여러분 마음도 있습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2. 5.

“사실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루카복음 12장 34절”)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늘의 강론

아우구스티누스 전하고 

"당신에게 이 세상의 재물이 사라지더라 해도 악한 행동으로 다시 그것을 얻으려 하지 마세요. 다시 그것이 당신의 것이 되어도 선한 행실로 그것을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쌓으세요. 장부다운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었다 해서 좋아하지도 잃었다 하여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담아 두세요. ‘여러분의 보물이 있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마음도 잇을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 마음을 들어 올려야 한다는 바로 그 말을 들을 때,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짓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서간집 189)

 나는 이리 들었다.

이 땅의 재물들은 참으로 힘든 여정을 통하여 얻어진다. 개인의 힘겨움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누군가의 소유가 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상실의 아픔을 당해야 한다. 그 당함이 깊어 때론 죽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아픔에 대한 대가가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것이 이 세상의 기쁨이다. 특히 소유를 통한 기쁨이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아픔의 강요, 즉 악행을 하게 된다. 커피 한 잔을 아무 생각 없이 팔아도 그 커피 한 잔이 그 자리에 오기 까지 때론 잔인한 자본주의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힘겨운 노동을 착취당해야 했다. 그 대가로 누군가는 싸게 사서 또 비싸게 판다. 그렇게 이익을 만들고 그 이익으로 당당히 삶을 즐긴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은 한 없이 힘들어진다. 너는 공부를 잘했으니 당연히 누리라는 이상한 논리는 공부 잘해서 권력자가 된 이들의 이상한 폭력의 기괴한 논리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돈이든 힘이든 가진 이는 누리고자 한다. 그리고 그 누림 속에서 많은 이들이 아파하는 것이 현실 공간이다. 굳이 재물이나 힘만 그럴까? 선한 일을 하는 이를 향한 이런 저런 악한 말과 태도를 바라보면서 혹시나 그와 친한 나에게도 그 악한 말과 태도가 전해질까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있다. 조금 더 편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 그 이 땅에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 그로 인하여 아파하는 이를 그냥 두는 것, 자기 한 사람의 편의를 위하여 선함과 거리를 두는 것, 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돈과 힘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를 즐기고 그 아픔과 거리를 두는 것, 많은 이들의 악한 미움 가운데 힘들게 선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이의 그 애씀과 거리를 두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천국에 자기 가진 것을 쌓는 이는 다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꺼이 내어 놓는다. 아파하는 이들, 가진 것 없이 힘겨운 이들의 그 아픔을 그냥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아픔을 위하여 내어 놓은 그 내어 놓음이 곧 천국에 가까워짐이며, 이 땅이 아닌 천국에 쌓아 올림이다. 악한 이의 미움 속에 힘겨워하는 이의 그 애씀의 옆에서 그에게 든든한 벗이 되어 함께 싸우는 것도 이 땅이 아닌 천국에 쌓아 올림이다. 그렇게 타자를 향한 애씀이 천국에 그의 행복을 쌓아 올리는 일이다. 

이 세상에선 쉼 없이 괴롭고 힘든 것이 천상에 행복을 쌓아 올리는 일이다. 돈도 힘도 나누고,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편으로 다가가는 것이 행복을 쌓아 올리는 일이다. 오랜 시간 익숙한 삶이라도 그 삶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그 분노에 힘쓰는 이의 벗이 되어 함께 부당함과 다투며 그 힘씀을 외롭게 두지 않는 것도 행복을 천국에 쌓아 올리는 일이다. 

이렇게 비우고 비우는 삶, 그 삶이 천상에 자신의 자리를 두는 일이라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 세상인가? 천상인가? 거기 나 역시 있을 것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2019년 12월 5일

계산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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