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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더불어 삶이 신앙의 삶입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2. 10.

“하느님의 성전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할 때, 치쁘리아누스(Cyprisnus, 200/210?-258)는 converso(꼰베르쏘)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동사는 그냥 '살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가 아닙니다. 같이 더불어 산다는 의미입니다. '벗'으로 더불어 살고 '부부'로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말입니다. 홀로 가다가 더불어 돌아와 더불어 산다는 말입니다.
치쁘리아누스는 하느님의 성전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 할 때, 그냥 '홀로 살다'가 아닌 '더불어 살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느님은 단지 나만의 '나'의 하느님이 오직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우리 모두의 하느님, 하나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의 원래 모습이라 치쁘리아누스는 말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귀결일 수 있습니다. 하나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냥 한 성당에 한 장소에 함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 두지 않는 그러한 '더불어 있음'입니다. '우리로 있음'입니다.
이 땅 나의 아버지와 나의 자녀 나의 아내와 나의 남편을 향하면 결국 '나의' 무엇에 집중하며 '우리의' 좋음보다 '나의' 좋음만을 챙기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가 부서진단 말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가족보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있게 하시는 하늘의 하느님, 누군가 한 분의 아버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버지인 그 분을 참 하느님 아버지로 여기고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치쁘리아누스는 참된 하느님은 나 하나만을 위하여 사사로이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라는 분이라 하십니다. 참된 기도는 공공의 기도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시는 그런 하느님이라 하십니다. 그런 하느님의 성전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이기심 없이 더불어 살아야겠지요. '더불어' 말입니다. 그렇게 성전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 될 때, 자연히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에 하느님과 더불어 영원히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2019년 9월 12일 치쁘리아누스께서 저에게 주시는 지혜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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