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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비워진 이들에게 채워주세요. 그러면 비워진 당신의 그 자리를 채워주십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2. 3.

“‘복되어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받으리니(마태오 5,7)’라는 이 말씀을 보십시오. 자비를 우선 베푸셔야 합니다. 그러면 자비를 받게 됩니다. 자비를 받고 싶으면 다른 이에게 자비를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넘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하여도 여전히 모자란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그리도 많이 넘치게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아직 영원한 생명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거지가 구걸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하느님 앞에서 거지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구걸하는 동안 여러분도 구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그 비어 있는 곳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가득 차 있는 여러분이 어려움에 처한 비워진 이들을 채워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그 빈곳도 하느님의 충만함으로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아우구스티누스의 마태오복음 5,7 '자비로운 사람들' 에 대한 뜻풀이. 설교집 53,5.)

 

'복' 달라 기도합니다.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하니 더 많이 채워달라 기도합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은 아무 것도 나누지 않습니다. 힘든 이들 앞에서 자기 이기심만을 생각합니다. 자기 행복만 생각할 뿐 다른 어떤 것도 돌아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때를 씁니다. 더 많이 조금 더 많이 채워달라 말입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힘겨운 이웃, 가진 것이 없어 힘든 그 비워진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우선 채워주라 합니다. 자신에게 채워진 것을 그리 나누며 비울 때, 하느님은 당신의 충만함으로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채워주실 것은 돈이나 이런 저런 물건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니 그 도와준 만큼 하느님이 현금 결제를 대신 해 주신다는 말은 아니니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채워주십니다. 참 행복 가운데 웃으며 하느님과 더불어 있음의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돈이 아닌 그 행복을 채워주시는 분이시란 말입니다. 그러니 나누어 줌으로 비우는 것은 착하게 가난해 지는 것이며, 행복하게 가난해 지는 길입니다. 당연히 그 가운데 자신의 아집도 함께 비워지겠지요.

아픈 가운데 힘겨운 타인을 향하여 하느님의 손이 되고 발이 되고, 하느님의 품이 되어 그들을 안아주어야 합니다. 외롭게 아프지 않게 안아주어야 합니다. 그 더불어 있음의 자리에 '하느님'도 '나'도 그리고 '타인'도 모두가 '우리'로 하나 되어 웃고 있겠지요.

우선 내 것을 비웁시다. 비워져 힘든 이들에게 가진 것을 비워 채웁시다.  그때 하느님 역시 내 혼 가운데 비워진 자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하느님과 타인과 우리가 될 것입니다. 또 바로 그 우리됨으로 있는 하느님과 더불어 있음의 행복 가운데 참된 좋음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2019. 12. 03 

가실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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