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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존재론

철학연습 20181011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8. 10. 12.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

만해 한용운

이별은 美의 創造입니다
이별의 美는 아침의 바탕(質)없는 황금(黃金)과 밤의 올(絲)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永遠)의 생명(生命)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美는 이별의 創造입니다

-- 추억은 현실의 왜곡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우리에게 남이다. 남 중에 남이다. 다가갈 수 없는 남이다. 나는 그 남에 대한 관념 속에 산다. 그 관념 속에 살기에 나를 이루는 존재론적 양분들은 하나 같이 현실을 온전히 담지 못한 왜곡된 관념들이다. 그 왜곡의 관념 속에서 나는 나로 존재한다. 왜곡을 넘어 나에게 남이 아닌 너로 온전히 있는 관념을 벗은 너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살아가면서 나는 널 그리워하는 나로 나를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너는 아름다움도 참다움도 벗어난 어느 곳에 있는 신비다. 그 신비가 나에게 진실된 아름다움으로 왜곡된 관념으로 다가오면 너는 그대로의 너가 아닌 너에겐 남이 그래도 나에겐 너인 관념이 되지만, 그래도 나에게 그 관념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너와 사랑한 그 순간들도 나에겐 온전히 너에겐 남이고 나에게 너인 그 관념을 만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처음부터 엄청난 존재론적 간격을 둔 만남이었다. 그 간격을 두고 일어난 그리움이었다. 사랑이라지만 언제나 너와 나는 이별의 상황에서 일어난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있었는지 모르겠다. 너에겐 나 아닌 나라는 나에겐 남인 어떤 관념으로 너에게 다가가고 너 역시 너 아닌 너로 너에겐 남인 너로 나에게 다가와 있다. 이런 서로 만나지 못하는 간격에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그리움의 눈물로 우리 만남은 처음부터 아름다움이고, 아름다움은 우리 이 존재론적 이별에서 일어난 그리움의 산물인지 모르겠다.

결국 나라는 존재의 벽을 조금씩 녹아내며 너에게 너인 그 너로 조금씩 다가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나 멀리 떨어져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한 그 먼 곳의 너를 향하여 너 아닌 너, 너에게 남인 너의 손을 잡고 슬프고 힘겨운 아름다운 삶의 여정을 살아본다.

유대칠 2018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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