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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혼이 녹아든 기도와 같은 삶... 우리는 하나되어 주님에게 나아갈 것이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9. 12. 14.

말로 하는 기도는 참으로 흔하고 흔하다. 많이들 한다. 여기 저기에서 참 많이 한다. 주님의 기도는 가톨릭교회에서도 많은 개신교회에서도 동방정교회와 성공회에서도 하느님을 향하여 올려진다. 말로는 참으로 흔하게 하는 기도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삶은 그렇게 살고 있을까? 그 기도가 말에서 그치지 않고 혼에 녹아든 기도라면, 그 기도의 내용은 삶이 되어야 한다.

치쁘리아누스는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기도는 우리 신앙의 토대이고 기둥들이고 영양분들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 우리의 삶이 오롯이 살아지는 따스한 집이 우리의 신앙이라면, 그 신앙이라는 집이 세워질 흔들리지 않는 토대, 그리고 단단하게 올려져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기댈 단단한 기둥들이 필요하다. 또 이런 저런 이기적인 욕심으로 부터 우리됨을 지켜내면서 자라게 할 영양분이 필요하다. 이것들이 바로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다. 주님의 기도말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늘에서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그 분은 나의 아버지도 너의 아버지도 그의 아버지도 아닌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 그 분은 우리가 하나 되어 있을 때, 온전히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우리의 아버지시다. 그리고 그분이 직접 가르쳐주신 그 가르침도 그리 알려준다. 하나되어 있으라고 말이다. 나누어져 흩어져 있지 말고 하나로 있으라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시작이고 우리 신앙이 이기심의 신앙으로 병든 신앙과 구분되게 하는 시작이다. 바로 그런 신앙만이 우리의 토대가 되고, 기둥들이 되고 영양분이 될 것이다.

사회교리, 어쩌면 우리의 모습으로 다가간다면 자연이 이루어진 교리들일지 모르겠다. 우리되어 하느님에게 다가간다면, 이루어질 교리말이다.

하느님은 목소리가 아닌 우리 혼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 했다. 목소리라는 물리적 조건의 크고 좋고 화려함보다 비록 볼 것 없이 초라할 지라도 목소리로만 다가오지 않고 혼으로 다가오는 기도, 그렇게 혼이 녹아든 목소리, 나 하나만을 위한 목소리가 아닌 우리 모두 더불어 나아가겠다는 그 혼의 기도, 그 혼이 드러난 삶, 하느님은 바로 그것을 보신한다는 말이다.

목소리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래서 하나 되기 힘들다. 그러나 혼이 목소리를 지배할 때, 그 서로 다른 목소리는 우주라는 거대한 울림 속에서 아름다운 화음의 노래가 된다. 혼이 목소리가 될 때, 저마다 마땅히 있을 모습으로 있으며 그렇게 하느님 보시기 좋은 화음이 된다. 하나 된 생각 없이 여기 저리 서로 다른 목소리는 흩어진 소리의 잡음이 된다.

흩어진 시끄러운 목소리가 아닌 우리 가운데 너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 몰리치지 않을 때, 참다운 우리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로 더불어 나아가는 길, 바로 그 길이 하느님을 향한 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길은 흩어진 나와 너의 따로가 아닌, 그 외로운 홀로 있음의 모습이 아닌, 너와 나 모두가 더불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우리와 이미 더불어 있는 그 분이 우리에게 깨우치기 원하는 바로 그것도 우리됨일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 

우리 가운데 너를 위해서 우리의 아버지에게 기도한다.

우리 아버지에게...

 

유대칠 암브로시오

2019 12 13 서재강학회에서

가실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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