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칠의 '교부학'
Patrologia Daechilyi
1. 서론
‘교부학’이란 학문은 기본적으로 ‘역사신학’에 속한다. 역사 속 과거 문헌과 그 전통 속 지혜를 궁리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한 갈래다. 그러나 그렇다고 교부학을 단순히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틀 속에 구속하여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만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닌 신앙 앞에서 혹은 참된 행복을 향한 사람의 다양한 역사적 몸짓과 궁리함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실천을 살피려는 이들에게도 소중한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원시 불교의 가르침이 단순한 불자에게만 유익한 지혜의 말씀이 아닌 것과 같이 그렇게 교부의 가르침 역시 인류 보편의 지혜를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중해 연안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철학을 이해할 수 있고 돌아 볼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이기도 하다.
라틴말로 ‘교부학’은 ‘patrologia(파트롤로기아)’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헬라말 가운데 ‘아버지’를 뜻하는 ‘pater(파테르)’와 ‘~론’을 의미하는 ‘logos(로고스)’가 합성된 말로 글자 그대로의 뜻은 ‘교회의 아버지에 대한 이론 혹은 학문’이다.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신학적으로 그리고 교리학적으로 어느 정도 체계적인 질서를 가지며 존재하게 된 거름과 같은 이들이란 의미에서 교회의 아버지라고 보면 적절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아버지에 대한 학문이 바로 교부학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교부학’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모든 시기에 걸쳐 교회의 거름이 된 이들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도교에 한정하고 있다. 교대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시대적 모험과 궁리 그리고 실천이 담긴 문헌을 고전학적이고 역사신학의 시선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교부학, 즉 교회의 아버지에 대한 학문이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라는 의미를 보자. 여기에서 ‘아버지’는 흔히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하느님 아버지’ 혹은 ‘성부’의 의미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앞서 소개할 바와 같이 교회의 거름이 된 이들, 지금 교회의 기초를 다진 이들이란 의미에서 ‘교회의 아버지’에 한정된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공의회에 참여한 주교에게도 ‘교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 주교의 신학 혹은 문헌을 교부학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고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금 교회의 기초를 다진 인물들로 교부학의 대상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헌학적으로 다가서면 교부 문헌은 대체로 과거의 일들이고, 과거의 고민들이다. 지금의 일이 아닌 옛일이다. 그러나 교부 문헌은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그 가운데 보편적 지혜, 즉 오랜 시간 지구 곳곳의 많은 이들에게 신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매우 깊은 지혜를 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지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생각한다면, 그저 옛 일을 담은 문헌을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그 문헌을 읽는 ‘나’와 ‘우리’에게 직접적인 지혜를 주는 현재 진행형의 역동적인 지혜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문헌을 단순히 옛 일에 대한 기록이라 하여도 그 자체로도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다. 지금은 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그리고 다수의 개신교로 나누어있지만, 이 많은 갈래의 하나 된 근거이고 거름이란 점에서 오랜 과거의 문헌인 교부 문헌은 그저 과거의 기록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 대한 연구이고, 나누어지기 이전 모습에 대한 돌아봄에 대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론 앞서 이야기하였듯 그 자체로 인류 보편 지혜의 사상사이고 철학사이며 신학사이고 그리스도교 교회사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문헌이다. 그러니 그 문헌에 대한 연구인 교부학 역시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학문 행위다. 무엇보다 교부학이 현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우리에게 주는 지혜는 신앙의 근거가 되는 히브리 종교를 사람이 가진 사유 근거가 되는 이성에 의한 헬라철학으로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자기 신앙을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였는가 이다. 철학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며 신앙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주장조차 하나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입장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상사의 한 모습이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와 오리게네스(185?-254?) 그리고 암브로시우스(340?-397?) 가운데 녹아든 헬라철학의 모습을 지운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오리게네스 그리고 암브로시우스의 사상은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으로 있지 않았을 것이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특별한 신앙의 전승과 설명 그리고 변론의 업적을 이룬 이들을 교부 혹은 거룩한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교부가 성직자이거나 주교인 것은 아니었다. 이 가운데 평신도 역시 존재한다. 헬라철학에 정통한 철학자 교부 유스티누스(100?-165?)와 교부 치쁘리아누스(200?-258?)에게 영향을 준 교부 떼르뚤리아누스(155?-240?)는 평신도 신학자다.
과거 교부들이 주장한 이론 가운데 몇몇 신학적 입장은 지금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선 ‘이단’인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교부가 살던 시기는 그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시기인 경우들이 있다. 아직 정통교리가 확정되지 않고 다투며 고민하던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그 교부의 시대 이후 그 논쟁이 정리되고 그 문제에 대한 정통교리가 확립되었다면, 그 정통교리와 다른 주장을 하였다는 이유로 소급 적용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진 않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교부들의 많은 답은 지금 가톨릭교회의 입장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서로 다른 답만큼이나 그 답을 마련되는 과정과 그 고민의 배경 등 많은 것이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의 답만이 아니라, 그 답의 거름이 된 것들과 조건 그리고 다툼 속 다양한 고민들,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하고 생각하게 해 준단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부 문헌은 답 그 이상의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거의 한 인물을 교부로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 가운데는 교부의 생애와 교회 문헌의 승인 등이 있을 수 있다. 교부를 규정함에 있어서 시기적으로 고대 그리스도교라는 기준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방 교회는 대체로 세빌라의 이시도루스가 사망한 636년까지를 고대 그리스도교회이며, 교부의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서방 교회는 다마스쿠스의 요한이 사망한 750년까지를 고대그리스도교이며, 교부의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지금 그리스도교의 초석이 되고 거름이 된 이들, 지금 정통교리가 만들어지기 까지 치열하게 고민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오랜 노력과 그 노력이 담긴 문헌, 즉 교부와 그 교부의 문헌이라면 대체로 교부학의 대상이 된다.
‘교부’의 노력은 현재 지구상 대표적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지금과 과거를 이해함에 핵심을 이룬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부들의 노력과 고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확립에 기여하였다. 이 때 교부들과 다툰 시대적 어려움은 바로 아리우스 이단이다. 당시 교부들은 이단인 아리우스의 학설과 그리스도교의 교리는 합리적으로 구분함으로 그리스도교 교리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참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다 더 확실하게 규정하며 그렸고, 이를 통하여 더욱 더 분명히 그리스도교의 정통 신앙, 포기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모친, 즉 ‘성모 교리’가 확정되었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확정하였다. 이와 같이 공의회의 그리스도교 역사에서의 성과는 교부와 무관하지 않다. 고대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일구어온 교부들의 노력을 지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누리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교리라 여기며 따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교부들이 일군 노력의 결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부학은 그리스도교의 지금과 과거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모습을 이해함에 있어서 핵심을 이룬다 하겠다.
교부들은 기본적으로 ‘교회학자’다. ‘교리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그 정통성이 만들어져 갈 장소를 만든 인물들이며, 그 삶의 성덕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히 교회 문헌에 인용되고 승인된다. 그리스도교가 가진 소중한 보물이며, 지혜의 보석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와 같이 유익한 지혜, 그런 앎을 문헌 속에 적은 이들의 삶 역시 웅장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힘들고 고된 삶을 산 이들이라 하여도 말이다.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를 보자. 그들은 교회 문헌 여기저기에 인용되고 있으며, 여전히 정통교리의 수호자임에도 분명하다. 물론 그의 학문적 성과는 굳이 더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하다. 그러니 그는 교부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모습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소중한 소재임을 본다면 역사적으로 그들에 대한 연구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교부는 ‘교회저술가’이기도 하다.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치쁘리아누스 등은 모두 그리스도교 신학 관련 저술을 적은 인물이다. 단순한 자기 신앙 고백 그 이상의 신학적 체계를 정리하고 구성한 저서를 남긴 인물이다. 그리고 이들이 남긴 문헌은 이후 많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에게 또 다른 영양분이 되어 소비된다. 이런 의미에서 교부들은 교회의 사상과 입장을 저장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그 발전시켜 나간 인물들이다. 그러니 그들 대부분은 단순한 과거 교회저술가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많은 이들의 스승이기도 하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오캄연구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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