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리스도교 문헌의 등장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형태로 사람의 앞에 존재하게 않았다. 그리스도교인에겐 부활과 승천이란 종교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종교적 진실이다. 이제 그가 남긴 말과 삶을 기억하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가진 진리를 죽은 과거가 아닌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현재형의 지혜로 있게 수단이 되었다. 처음엔 구전(口傳),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에 의존하였다. 바로 문서의 형태, 즉 글로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당시 많은 이들은 문자에 익숙하지 않았다. 문자로 적는다는 것은 우선 문자에 익숙한 지식인이 다수 있어야 했다.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문자에 익숙한 시대가 아니었다. 문자로 기록한다 해도 책은 지금과 같이 편하게 들고 다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책은 귀했다. 오랜 시간 지중해 연안의 많은 이들은 양피지에 기록했다. 양을 죽여 얻은 가죽에 글을 적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재료들도 쉽사리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쉽게 글로 기록된 문서의 형태로 작성하기 어렵게 하였다. 그리고 당시 많은 이들은 예수의 재림이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러 어려움을 이기며 글로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은 귀에서 귀로 전달되면서 서서히 변질된다.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된 하나의 ‘뜻(logos)’는 서서히 나누어져 갈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귀에서 귀로 전달되는 구전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이 아닌 조금 더 단단한 기억의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글로 적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본적인 삶은 어떠한 것인지 글로 적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한 그 뜻이 무엇인지 궁리하고 궁리하며 글로 적어가기 시작했다. 글로 적는 행위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지적 노력이었고, 동시에 그 글은 여럿으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더불어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좋은 수단이 되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은 교부들이 적은 글을 읽고 그리스도교가 궁금한 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리스도교 신자인 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교부들의 문헌이란 참고서를 읽으며 큰 도움을 얻었다. 이렇게 교부의 손으로 쓰인 교부 문헌이란 글로 기록된 하느님을 향한 고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그 뜻에 대한 기억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있게 하고, 새롭게 그리스도교 신자로 찾아온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지혜를 나누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하나로 더불어 있게 하는 힘, 즉 사람이 이해 가능한 논리 속에서 이루어진 성과들은 공동체의 신앙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며, 전파하는 수단이 되었다 .새롭게 그리스도교회를 찾은 이에게 무엇을 그리스도교의 핵심인가를 가르치는 수단이 되었다. 세례를 준비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세례를 받기 전 교리 교육을 받을 이론적 틀은 그들을 하나의 장 속에서 존재하게 하였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씀
'일간유대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된 '하나 됨(보편)'이란? (일간 유대칠 2호 2020. 01. 11) (2) | 2020.01.11 |
---|---|
성당, 거대함의 추구 (일간 유대칠 1호 2020.01.10) (2) | 2020.01.10 |
유대칠의 '교부학' 서론 (2020년 1월 4일) (0) | 2020.01.04 |
따스해지려한다. (2) | 2019.12.28 |
철학은 민중 속 눈물 방울의 울림에서 시작해야한다. (0) | 2019.10.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