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18 '울고 있음'의 터에서 철학은 어렵다. 사실 우리말로 되어 있어도 어렵다. 당연하다. 독일 사람에게 독일 철학이 어렵고, 프랑스 사람에게도 프랑스 철학은 어렵다. 단지 어럽지만 그 철학을 부여잡는 것이 그 공간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치열함 혹은 합리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살고 있는 그 곳의 고난의 참 의미를 궁리하고자 힘들지만 읽어간다. 그 고난의 참 의미, 그 뜻이 누군가에겐 진보적이고 누군가에게 보수적이라도 그렇게 읽어간다. 참 뜻을 알아내기 위해 말이다. 적당히 현실의 문제에 고개 돌리고 신비 속에 숨어 낱말 자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더 형이상학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언어 유희로의 장난감일 뿐이다. 참 철학이라면 고난에 고개 돌리지 못한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당한 고난이 그 고난의 전부라는 아집을 버려야 .. 2020. 7. 9. 가장 가까운 먼곳 민족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진 힘이 때론 희망이지만 때론 폭력 가득한 절망이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힘이 때론 희망이지만 떄론 폭력 가득한 절망이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힘이 때론 희망이지만 때론 폭력 가득한 절망이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진 힘이 때론 희망이지만 때론 폭력 가득한 절망이었다. 더불어 살기 위해 죽자가 아니라 너 죽어 나 살자! 외치는 이기적 외침의 듣기 좋은 말, 듣기 좋은 거짓, 결국 그것이었다. 민족이란 이름이지만 그 민족은 몇몇이었고, 그 몇몇이 그들만 누리고 살았다. 국가라는 이름이지만 그 국가는 몇몇이었고, 그 몇몇이 그들만 누리고 살았다. 종교라는 이름이지만 그 종교는 몇몇이었고, 그 몇몇이 그들만 누리고 살았다. 가족이란 이름이지만 그 가족은 몇몇이었고,.. 2020. 7. 8.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의 앞에 놓인 돌은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스스로 돌로 존재하고 있다. 돌로 존재하는 자기 정체성의 운동을 하고 있다. 조금 딱딱한 이야기지만, 사실 그렇다. 그는 자신의 본질에 충실하다. 그 본질의 충실함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좁혀져 있지도 않는다. 그 돌은 나에게 말을 건내기도 한다. 내 딸은 울산의 바다에서 주워온 돌을 나에게 선물했다. 딸에게 이 돌은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문진’이었다. 넘어가는 공책와 책을 잡아주는 무거운 돌은 딸에게 그렇게 쓸모있는 벗이었다. 바닷가에 그렇게 수백년 있었을 그 돌은 다시 나의 방에 들어와 나의 옆에서 문진으로 있다. 돌은 딱딱하고 무거운 본질의 구현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홀로 가진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는 누군가의 앞에서 말이다.. 2020. 7. 7. 철학과가 죽어간다. 쓸모가 없어서... 조선 시대 성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성리학 전공자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사실 나에게 여전히 조선 성리학은 권력의 시녀 혹은 권력자의 시녀였다. 성리학의 소신 때문에 죽었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기득권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 성리학을 익힌다는 것은 결국 순수한 학문적 그 무엇이 아닌 정계에 진출함이다. 성리학이란 공간에서 누군가의 제자라는 것은 단순한 사제 관계가 아닌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정치 권력에서 자신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성리학은 그렇게 조선 시대 양반들에게 실용적이었다. 결국 나라를 일본에 넘긴 것도 그들이었다. 성리학을 버려도 큰 문제 될 것은 없다. 시녀를 버리고 또 다른 시녀를 선택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지금 철학은 조선 시대 성리학과 같은 .. 2020. 7. 4. 이전 1 ··· 74 75 76 77 78 79 80 ··· 1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