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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메모

중세인에게 수학은?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18. 8. 29.

중세인에게 수학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심리를 잘 분석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심리적 작용들을 자세히 그려내기 위하여 노력했다. 플라톤 노선의 많은 이들은 감각 세계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우리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고민했다. 감각으로는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인간 뿐인데, 변하지 않고 보편적인 그런 인식들은 도대체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플라톤은 '상기'를 이야기한다. 상기설은 우리가 전혀 감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기 전 전쟁에서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가진 인식을 기억하는 것이란 논리다. 그렇기에 인간은 단 한번도 만지거나 본 적이 없는 삼각형의 이상향, 삼각형 그 자체, 삼각형의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이전에 본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 이전 전생이 있어야 한다. 전생이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미리 주어져있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인이다. 그것도 주교다. 그가 전생을 이야기할 순 없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전생 없이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수 혹은 기하를 이야기한다. 이데아계를 미리 보고 와서 지금 그것을 상기한다는 식이 아니라, 신은 우주를 수학적 규칙으로 계최적으로 질서있게 창조하였고, 인간은 그런 수학적 요소를 이미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데아계를 미리 보고 온 것이 아니다. 신이 인간에게 수학적 요소를 제공함으로 인간은 신이 우주를 창조한 그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수학은 신의 영혼 속에 존재하며, 신은 인간에게 그 수학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데아, 수학적 사고의 틀, 기하학은 신의 지혜이고 우주의 설계 언어이다. 수학은 피타고르스에게 우주론적이고 존재론적 매우 중요한 종교적인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에 이르러 이러한 상황은 더욱 더 커진다. 수학은 상기를 대신하여 인간이 온전한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수단으로 우리 영혼 가운데 주어진 것이 되기 때문이다. 수학은 바로 우주의 보편 언어이며, 신의 말이며, 인간은 수학 공부와 우주의 기하학적 원리를 이해함으로 그 신의 말을 이해하기 되었다. 그렇게 수학은 또 다른 의미로 일종의 계시 진리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었다. 


신은 로고스를 우주에 부여하였다. 수학, 지금도 우린 인간의 동향이나 날씨의 변화 그리고 우주의 이런 저런 변화를 수학으로 이애한다. 수학의 언어로 이해한다. 수학은 이렇게 우주를 이해하고 인간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일종의 언어, 우주 만물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었단 말이다. 이것은 지금만의 일이 아니다. 중세에도 그랬다. 수학과 기하학은 신이 창조한 우주를 이해함과 동시에 신의 정신 세계, 신의 언어를 이해하는 수단이며 신의 말을 이해는 신의 문법이었다. 


유대칠

2018년 8월 29일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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