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 사회에선 국왕이 그렇게 강력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의 단일한 사법권을 가진 존재도 아니며, 행정권을 가진 존재도 아니다. 하나의 단일한 질서 속 입법부가 있던 것도 아니다. 중세 봉건제는 지금 국가의 기본이 되어 있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없다. 봉건사회 기본은 봉토이다. 영주는 높은 귀족에서 땅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소유라기 보다는 보유다. 그리고 농노, glebae adscripti, 즉 땅에 종속된 이도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동시에 그 권리를 가지게 된다. 영주는 자신에게 이 땅을 허락한 높은 귀족의 소집에 의하여 기사로 군사력을 봉사해 야 한다. 이렇게 당시 봉건 사회는 서로 의무를 가지고 땅의 권리를 두고 군사력을 봉사 받았다. 이러한 피라미드식 권력의 꼭대기에 국왕이 있다. 국왕은 자신이 형식적으로 다스리는 땅에 대하여 다른 영주와 질적으로 다른 어떤 권리를 가지지 않았다. 질적으로 동일했다. 국왕이 실질적으로 자신이 다스리고 권리를 유지하는 곳은 자신이 가진 장원에서 뿐이다. 각각의 위계에 속하는 각각의 영주는 서로 질적으로 동일한 권리로 양적으로 다른 권리를 누렸다. 적은 권력의 하급 영주는 적은 땅과 그 땅에 종속된 이들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 이렇게 각각의 위계의 단위는 그 단위 가운데 질서를 가졌지만, 국왕 아래 전체를 ㅍ괄하는 하나의 지배권, 즉 보편적인 권력은 엄밀하게 없었다.
서로 다른 위계적으로 질적으로 같고 양적으로 다른 장원 가운데 권력은 일종의 작은 국가를 우유지하고 있었다. 이 독립되고 작은 자율 공간은 도시로 진화하고 중세 도시라는 농업 이외 또 다른 존재 방법으로 존재하는 독립된 하나의 단위로 만들었다. 그러나 중세 도시, 즉 그 경제적 사회적 작은 독립 단위는 장원제로 이미 자율적 공간에 익숙한 상태에서 가능한 공간이다. 이 장원과 장원 사이 경계와 경계 사이 그 틀바구니에선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스스로 정치 조직을 만들어 존재하기도 했다. 이들은 장원이란 질서의 외부에 존재하는 농민들의 자발적인 자율권 가운데 존재했다. 즉 약자들의 권력과 위계질서의 틈바구니에 존재한 재미난 존재들이었다.
작은 단위는 자체적으로 영주의 지배를 받았고 장원과 장원 사이는 자율적으로 스스로 질서 속에 유지하였다. 이런 위계와 혼돈된 서로 다른 파편화된 정치권력들이 위계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하나의 통일된 질서는 힘들다. 하나의 통일된 질서 속에서 가능한 입법과 행정은 힘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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