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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 1부 1질문 1논항 (유대칠 옮김)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 29.

신학대전 

 

토마스 아퀴나스 라틴어로 쓰고 

유대칠 암브로시오 한국말로 옮기다.

 

1부 

 

1질문

 

우리의 의도를 적절한 선에서 이루기 위해 우린 우선 거룩한 가르침은 어떠한 것이고 그 범위는 어찌 되는가에 대하여 논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논의되어질 것은 10가지다. 1. 그것이 필요한지? 2. 그것이 학문이기는 한지? 3. 그것은 하나인지 여럿인지? 4. 그것은 사변학인지 아니면 실천학인지? 5. 다른 학문과 어떻게 비교되는지? 6. 그것은 지혜인지 아닌지? 7. 신은 그 학문의 주체인지? 8. 그것은 논증인지 아닌지? 9. 그것은 은유인지 혹은 상징적인 언변으로 논의되는지? 10. 이 가르침에 대한 <성서>는 상이한 의미에 따라 설명하고 있는지? 

Et ut intentio nostra sub aliquibus certis limitibus comprehendatur, necessarium est primo investigare de ipsa sacra doctrina, qualis sit, et ad quae se extendat. Circa quae quaerenda sunt decem. Primo, de necessitate huius doctrinae. Secundo, utrum sit scientia. Tertio, utrum sit una vel plures. Quarto, utrum sit speculativa vel practica. Quinto, de comparatione eius ad alias scientias. Sexto, utrum sit sapientia. Septimo, quid sit subiectum eius. Octavo, utrum sit argumentativa. Nono, utrum uti debeat metaphoricis vel symbolicis locutionibus. Decimo, utrum Scriptura sacra huius doctrinae sit secundum plures sensus exponenda.

 

1논항

논항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다루어진다. 철학 교육을 제외한 다른 가르침은 필요 없어 보인다. 

Ad primum sic proceditur. Videtur quod non sit necessarium, praeter philosophicas disciplinas, aliam doctrinam haberi. 

 

이에 대하여 집회서 3장 22절 “너는 명령을 받은 일에만 전념하여라. 숨겨진 일은 너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말씀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성에 속하는 것들은 철학 교육 가운데 적절하게 논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 교육을 넘어서는 또 다른 가르침을 가지는 것은 과한 것으로 보인다. 

Ad ea enim quae supra rationem sunt, homo non debet conari, secundum illud Eccli. III, altiora te ne quaesieris. Sed ea quae rationi subduntur, sufficienter traduntur in philosophicis disciplinis. Superfluum igitur videtur, praeter philosophicas disciplinas, aliam doctrinam haberi.

 

게다가, 가르침은 ‘있는 것’에 대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 까닭은 어떠한 것도 ‘있는 것’과 전환되는 ‘참된 것’이 아니라면 알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있는 것은 철학 교육 가운데 논의된다. 심지어 하느님마저 말이다. 그러므로 철학의 한 분과가 신학 혹은 신성한 학문이라 불리는 것이다. 마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 6권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이다. 그러므로 철학 교육을 넘어서는 다른 가르침을 가질 필요는 없다. 

Praeterea, doctrina non potest esse nisi de ente, nihil enim scitur nisi verum, quod cum ente convertitur. Sed de omnibus entibus tractatur in philosophicis disciplinis, et etiam de Deo, unde quaedam pars philosophiae dicitur theologia, sive scientia divina, ut patet per philosophum in VI Metaphys. Non fuit igitur necessarium, praeter philosophicas disciplinas, aliam doctrinam haberi.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한다.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3장 16절에서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신성한 영감에 의하여 쓰인 것은 사람의 이성에 따라 마련된 철학 교육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철학 교육 이외 신성한 영감에 의한 다른 학문이 있다는 것이 유익하다. 

Sed contra est quod dicitur II ad Tim. III, omnis Scriptura divinitus inspirata utilis est ad docendum, ad arguendum, ad corripiendum, ad erudiendum ad iustitiam. Scriptura autem divinitus inspirata non pertinet ad philosophicas disciplinas, quae sunt secundum rationem humanam inventae. Utile igitur est, praeter philosophicas disciplinas, esse aliam scientiam divinitus inspiratam.

 

나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이성으로 탐구되는 철학 교육 이외에 신성한 계시를 따른 어떤 가르침이 있을 필요가 있다고 답한다.  

Respondeo dicendum quod necessarium fuit ad humanam salutem, esse doctrinam quandam secundum revelationem divinam, praeter philosophicas disciplinas, quae ratione humana investigantur. 

 

왜냐하면, 우선 <이사야서> 64장 3-4절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 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에 따르면 사람은 이성의 파악을 넘어가는 어떤 목적으로 신을 향하여 질서 지워졌다. 그러나 우선 그 목적이 사람에게 알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목적을 향하여 그들의 의도와 행위를 질서지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 신성한 계시를 통해 그에게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람의 이성으로 탐구될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것에 관해서도 신성한 계시에 의하여 교육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하여 이성으로 탐구되는 진리는 많은 않은 이에게 오랜 시간에 걸처 많은 오류들과 함께 혼재되어 주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가운데 놓여있는 사람의 구원애 대한 모든 것은 진리를 앎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구원이 사람에게 더 적절하고 더 확실하게 주어지기 위해 신성한 계시를 통해 신성한 것에 대하여 교육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하여 탐구되는 철학 교육 이외 계시에 의한 거룩한 가르침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Primo quidem, quia homo ordinatur ad Deum sicut ad quendam finem qui comprehensionem rationis excedit, secundum illud Isaiae LXIV, oculus non vidit Deus absque te, quae praeparasti diligentibus te. Finem autem oportet esse praecognitum hominibus, qui suas intentiones et actiones debent ordinare in finem. Unde necessarium fuit homini ad salutem, quod ei nota fierent quaedam per revelationem divinam, quae rationem humanam excedunt. Ad ea etiam quae de Deo ratione humana investigari possunt, necessarium fuit hominem instrui revelatione divina. Quia veritas de Deo, per rationem investigata, a paucis, et per longum tempus, et cum admixtione multorum errorum, homini proveniret, a cuius tamen veritatis cognitione dependet tota hominis salus, quae in Deo est. Ut igitur salus hominibus et convenientius et certius proveniat, necessarium fuit quod de divinis per divinam revelationem instruantur. Necessarium igitur fuit, praeter philosophicas disciplinas, quae per rationem investigantur, sacram doctrinam per revelationem haberi.

 

그러므로 첫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람의 이성 그 이상의 것을 사람은 이성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것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같은 곳에서 “눈동자가 없으면 빛을 보지 못한다. 아는 게 없으면 큰소리치지 마라”(집회서 3장 25절)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거룩한 가르침이 이루어진다. 

Ad primum ergo dicendum quod, licet ea quae sunt altiora hominis cognitione, non sint ab homine per rationem inquirenda, sunt tamen, a Deo revelata, suscipienda per fidem. Unde et ibidem subditur, plurima supra sensum hominum ostensa sunt tibi. Et in huiusmodi sacra doctrina consistit.

 

둘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상이한 인식될 수 있는 근거는 상이한 학문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천문학자와 자연학자는 같은 결론을 논증한다. 즉 “지구는 둥글다”가 그렇다. 그러나 천문학자는 질료로부터 추상된 수학적인 중항을 통하여 이를 논증한다. 그러나 자연학자는 질료적으로 고려된 중항을 통하여 이를 논증한다. 그러므로 철학 교육이 자연 이성의 빛으로 알 수 있다는 조건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대상을 다른 학문이 신성한 계시라는 빛으로 다루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따라서 거룩한 가르침에 속하는 신학은 철학의 한 분과로 놓인 신학과 그 종류가 다르다. 

Ad secundum dicendum quod diversa ratio cognoscibilis diversitatem scientiarum inducit. Eandem enim conclusionem demonstrat astrologus et naturalis, puta quod terra est rotunda, sed astrologus per medium mathematicum, idest a materia abstractum; naturalis autem per medium circa materiam consideratum. Unde nihil prohibet de eisdem rebus, de quibus philosophicae disciplinae tractant secundum quod sunt cognoscibilia lumine naturalis rationis, et aliam scientiam tractare secundum quod cognoscuntur lumine divinae revelationis. Unde theologia quae ad sacram doctrinam pertinet, differt secundum genus ab illa theologia quae pars philosophiae ponitur.

 

2020.01.29

유대칠 

나의 철학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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