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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읽기

이 절망의 터에서 희망을 본다. <대한민국철학사> 읽기 1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3. 16.
"고난은 죽으라 있는 것이 아니다. 고난은 존재론적으로 재난이 아니다. 스스로의 생명을 더욱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하는 시간이다. 사람이 스스로 종이 되어, 보이는 주인이거나 보이지 않는 주인이거나 주인을 가정해 고개를 숙이고, 그것이 운명이라며 살아가는 것은 없는 원인에 고개 숙인 결과다. 스스로 자기 원인이며, 스스로 자기 결과인 사람에게 그런 종살이, 그런 숙명론은 가장 큰 병이다." (<대한민국철학사> 404쪽)

고난의 시간입니다. 지금은 고난의 시간이 분명합니다. 오늘 새벽 저는 스페인의 한 신부님께서 자신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자신으로 인하여 성당은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출입이 통제된다면서 집에서 신앙 생활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바이러스로 하느님의 품에 안긴 신부님들을 기억해 달라는 말씀,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불어 모여 하느님을 향한 미사를 올릴 수 있다는 말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울먹이는 신부님, 당신이 지금 고난의 시간 속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더불어 신앙을 일구는 성도님들의 평안을 위한 걱정과 신앙을 당부하는 모습에서 이런 위기의 시간에도 굳이 교회에서 예배를 보려는 이기적 종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이 다시금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은 미사를 통하여 이런 저런 성사를 통하여 우리와 있으심을 드러내기고 우리를 품으시지만, 신부님의 말씀 처럼 하느님은 그 틀 속에서 구속되어 있는 분은 절대 아님을 저는 확신합니다.

고난의 시기, 이 시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재난입니다. 죽음이 있고 아픔이 있고, 죽음 이후 남겨진 슬픔과 빈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의 시간 가운데 저는 여러 가지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절망의 순간, 그 순간이 오직 절망으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그 희망 없음의 순간, 희망의 간절함이 더해지고 그 간절함이 더해짐 만큼이나 희망은 현실로 다가오듯이 말입니다. 이 고난을 남의 손에 맡기고 그냥 기다리지 않는 스스로 움직이는 뜨거운 희망의 손길들을 봅니다. 소방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가 시험을 뒤로 하고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로 가득한 대구의 병원에서 봉사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영어 과외 선생님이 마찬가지로 그 병원에서 이런 저런 일을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의원은 잠시 뒤로 두고 환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와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의 그 따스한 열정을 보면서, 저는 종교에서 보지 못한 사람됨과 우리됨의 뜨거움은 바로 이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 신이란 자, 스스로 자신이 모두의 희망이란 자, 그런 이를 따르는 비밀조직 같은 종교가 이 사회의 고난에 등돌리고 자신들의 이기심을 신앙으로 치장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그렇게 정말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 아픔의 옆에서 그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고난의 순간, 그 희망은 우리의 밖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다고 말입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치장한 우리의 밖, 그들이 아니라, 작든 크든 아픔을 아는 이, 그 공감의 순간,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어 더 이상 너의 아픔은 남의 아픔이 아니라며 더불어 있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는 그들이 돈이 있어 그렇다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적은 돈을 낸 연애인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그렇게 조로으로 자신의 위선과 거짓을 진실인냥 드러내는 순간, 크든 적든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내어줌으로 우리를 이루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을 보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다. 나만 아는 아름다움, 나만 즐기는 아름다움, 나만의 예술, 이런 개인주의는 결국 사회를 흩어지게 한다. '홀로 있음'을 즐기는 이들로 가득한 사회는 흩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민중의 서정은 흩어지지 않으려 한다. 서로 부둥커안고 춤추게 한다. 우리 모두를 기쁨으로 하나 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홀로 있으려는 이의 서정이 아니라 민중의 서정으로 가능하다."(<대한민국철학사> 485쪽)

더불어 있음의 아름다움, 그 우리됨의 아름다움, 그 사회적 미학의 시선 속 우리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런 저런 헛소문들이 우리를 흩어지게 한다. 불안을 부정하면서 서로를 불신하게 한다. 강박증 환자로 만들어 사태를 더욱 더 극악하게 만들고 다른 모든 이들이 그러하니, 너도 너만 생각하고, 너도 너희 가족만 생각하라 한다. 그 강박에서 벗어나 우리를 보자. 진짜 우리를 보자. 우리 가운데 너의 아픔을 보고, 우리 밖에서 다가올 구원의 손길보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우리 서로에게, 나란 존재가 너에게, 너란 존재가 나에게 서로 희망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육화된 하느님의 모습이 될 수 있게, 그렇게 살아보자.

이기적인 종교, 나부터 더 빨리 더 확실하게 하느님에게 가려는 암표를 파는 곳이란 듯이 설치는 종교, 하느님은 그런 홀로 있음의 이기적인 종교에 절대로 있지 않은 분이시다. 참된 희망은 절대 그러한 곳이 없다. 하느님은 더불어 있음의 이타적인 종교와 더불어 있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참된 희망은 바로 그러한 곳이 있다. 더불어 있음,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바로 그곳말이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서, 가진 것의 크기를 넘어서 말이다.

나는 오늘 이 절망의 터에서 이렇게 희망을 본다.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나는 이 절망의 터에세 하느님의 손길을 확인하고, 철학적으로 나는 이 절망의 터에서 참된 좋음, 그 희망의 모습을 본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 오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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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대한민국 철학사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의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다. 위계의 사회였던 조선을 제대로 뒷받침해준 성리학과 이후 사민평등 사상을 가진 양명학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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