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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메모

중세철학사에 다가가기... 질송에게 다가가기...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3. 30.

저도 질송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 참 불만이 많아요. 그런데 그의 연구들, 특히 철학사와 관련된 작업들은 거의 100년 전의 것입니다. 우리가 흔하게 질송의 책을 접하지만 질송의 철학사는 3.1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쯤 나온 책입니다. 그때 그가 철학사 작업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 사이 많은 중세철학계의 변화도 있구요. 저도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중세철학사 연구가이니 그의 100년 전 성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철학사라는 것이 역사학적 입장에 따라서 아주 많이 달라지거든요. 그게 객관적 사실의 모임이라기 보다는 사실 철학사관의 차이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게 만들어지는 주관적 사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그 주관이 허무맹란한 상상의 것이 아닌 나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은 분명하죠.

그런데 요즘 질송 등과 다른 길로 나아가는 나의 중세철학사를 쓰면서 우리에게 없는 것을 하나 마주하게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를 차차 이야기하게 될 것이고 책이 나오면 그 책에서 접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질송, 그 질송이 어떻게 중세철학사를 쓰게 되고 그 철학사 속에 등장하는 그의 해석은 어떤 식으로 완성되는지 그것을 알면 조금 더 알차고 재미나게 그의 철학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요즘 다시 그의 중세철학사를 읽어보고 있어요. 한국어 말구요. 외국어 실력이 대단하지 않은데 외국어로 읽는 것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어렵게 고민하면서 읽어보려구요. 잘 쓰인 책입니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상당히 잘 쓰인 책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 중세철학사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중세철학사란 것이 사실 서구에서도 그렇게 나이 많지 않아요. 철학사가 서구에서도 그렇게 오랜 전통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것도 차차 하게 되겠지요.

하여간 질송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을 알면 조금 더 재미나게 질송을 읽을 수 있습니다. ㅎㅎ

생각나면 하나 하나씩 질송에 대해 이야기 나누도록하겠습니다.

유대칠 씀

2020 03 29

29살의 유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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