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특별히 미운 사람이 없다. 싫은 이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미워한다는 생각은 조금 많이 사라져 버렸다. 가만히 생각하면, 과거엔 구체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그냥 내 관념 속 누군가를 만들어 그와 싸운 듯 하다. 내 머리 속 관념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당장 싸우려하고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싸운 것은 그가 아닌 내 관념이었다. 왜 그런 관념이 생겼을까? 어쩌면 그것도 내 상처의 흔적일지 모른다.과거 나에게 상처를 준 몇몇 사람들, 그 몇몇 사람들도 저마다 다 서로 다르게 나쁜데 그 서로 다른 다름을 넘어서는 그들 사이 흐리게 비슷한 어떤 것을 확실하게 존재하는 무엇으로 확신해 버린 것 같다. 바로 그 악의 기운과 싸워 죽여버려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저런 쓰레기' '저런 미친' 이런 이야기를 토해내며 어떤 식으로든 싸우고 싶었다. 남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고 남에 대하여 함부로 조언이란 식으로 은근 무시하며 그런 중에 나도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하면 나도 나를 괴롭히던 그 갑이 되고 싶었을까?
지금은 많이 덜하지만 과거는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올라오기도 했다. 나를 뭉게고 있지만, 나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힘 앞에서 때론 절망하며, 그 절망은 분노로 드러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오랜 시간 내 왼쪽 주먹의 한 곳이 패여있는 것은 피가나도록 벽을 때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 무력감. 겨우 벽을 향한 분노 정도. 그렇게 분노로 가득차 살아가니 결국 힘든 것은 나였다. 나는 그들의 그 조롱이 지나고 지난 과거가 되어도 어전히 그 순간에 잡혀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살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 그냥 혼자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응원하는 이도 없이 몇 등인지도 없이 그냥 그냥 그떄 그때 죽을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눈 감고 그냥 주어진 길 죽도록... 눈을 뜨면 응원 없다는 것도 알게 되니까... 아무도 보는 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지금...
미움도 많이 덜어지고 나와 죽을 힘을 다해 싸우던 그 관념들도 사라지고 없어진 듯 하다. 여전히 싫은 것은 있지만, 그것으로 불안해 하지도 않고, 주먹으로 벽을 떄리지도 않고,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고 나에게 쌍욕을 하는 놈들에게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는 일도 하지 않는다. 죽을 힘을 다해 달리기 보다 애써 쉬려 한다. 아직 쉬는 것이 힘들다. 쉬면 불안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능한 놈이 놀고 있다는 이야기... 요즘 들을 때마다 집에 있는 것이 불안하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남들에겐 노는 놈이다. 그래서 쉬면 혼자 불안하다. 그래도 애써 산책하고 애써 베란다에 키우는 고추도 보고 식물들도 본다.
여전히 과거 나를 아프게 한 그 부조리에 대한 분노는 그대로 기억하지만, 싸우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땐 당장 한 대 맞았으니 어떤 식으로든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금 오래... 조금 더 오래... 나쁜 놈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려 한다. ㅎㅎ 허락된다면 내가 아무렇지 않게 커가는 모습이 그들에게 조금은 자랑이 되면 좋겠고 말이다.
차 한잔의 여유와 글 한 줄의 소중함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의 포근함...
입과 눈 그리고 귀가 그렇게 웃고 있을 때, 죽기 위해 글을 쓰고 생각을 만들어내기 보다 그냥 그 작디 작은 미소와 때론 조금 아픈 눈물이 녹아든 나를 담은 글을 적어내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꿈은 세계 최고의 철학자이지만 ㅎㅎ 그냥 좋은 사람... 그것으로 충분하다.
유대칠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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