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대상의 대립은 주체가 대상을 이해하는 조건이 된다. 나라는 주체가 남이란 대상과 마주할 때 나는 남을 인식하고 편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의 대림은 흔히 주체 중심으로 대상을 배제하게 한다. 그러나 나라는 주체와 더불어 있는 대상은 항상 주체를 구성하는 조각을 만들어왔다. 즉 나는 수많은 너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더불어 있음의 터이다. 그리고 이 터는 점점 생동적으로 역동하고 있다. 만남의 더해짐은 존재의 풍성함으로 이어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주체가 이와 같이 역동적이듯이 나 아닌 나, 즉 대상 역시 자신의 편에선 주체이며, 그 주체 역시 역동적으로 있음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와 너의 만남은 역동적인 두 존재의 더불어 있음의 마주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역동성의 역동들이 또 다른 역동서으이 역동들을 만나 이룬 다양한 변이의 역동들이 다시 서로의 역동적 존재의 조각으로 주어진다. 즉 그렇게 두 존재는 또 하나의 겹을 각자 이룬다.
결국 더불어 있음의 존재론에서 만남은 주체와 대상의 만남이 아니라, 주체와 주체의 만남, 그것도 역동하는 두 존재의 만남이며, 그 만남으로 또 다른 서로 다른 역동의 존재의 겹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2020 08 20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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