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세철학메모

철학의 대전환... 아리스토텔레스, 그들은 달랐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9. 25.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을 조건으로 이루어진 ‘철학’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철학’이라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헬라스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더 엄밀하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 서유럽은 라틴어로 번역된 문헌에 한하여 철학이 이루어졌다. 라틴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라틴어로 번역된 것이 그렇게 풍부하지 않았다. 라틴어로 되어 있는 것만이 헬라스 철학으로 중세 서유럽의 학자들을 이어 줄 수 있었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반 ‘칼키디우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플라톤 『티마이오스』와 5세기에서 6세기 ‘보에티우스’가 번역한 조금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 정도 그리고 4세기 ‘마리우스 빅토리누스’가 번역한 플로티누스의 『엔네아데스』의 일부 정도가 헬라스 철학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경로였다. 흔히 중세 철학을 이야기하며 플라톤 철학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작품은 ‘피치노’에 의하여 15세기나 되어야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유럽에 소개된다. 쉽게 말해 르네상스를 되어야 서유럽에 플라톤이 제대로 전해진다. 그 이전 서유럽의 가장 강력한 플라톤 철학의 전통은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리고 아레오파기타 디오니시우스와 같은 신플라톤주의 철학 계열의 문헌들이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은 12세기 중엽에서 13세기 중엽에 들어서야 라틴어 번역되어 여러 학자들에게 읽히고 연구된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티마이오스』의 일부가 유일했고, 플라톤 철학 전체는 온전히 전해지지 못했다. 플로티누스의 철학 역시 신플라톤주의가 녹아든 아레오파기타 디오니시우스와 같은 이의 문헌에서 접할 수 있을 뿐, 그 참된 실체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겨우 암브로시우스와 보에티우스 그리고 키케로와 세네카의 글에서 소개하는 단편적인 지식으로 고대 헬라스 철학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철학함에 제대로 의지하며 활용할 수 있는 고대 헬라스 철학의 권위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거의 유일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제목은 그대로 한 학문의 이름이 되어 버린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이란 철학의 한 갈래의 명칭이 되었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이란 갈래의 명칭이 되었으며, 『정치학』은 정치학의 명칭이 되었고, 『자연학』은 자연학(물리학)의 명칭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토대로 논리학을 연구한 것도 그 이후 그의 철학적 작품을 연구하며 철학을 다져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과 그의 철학이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력한 영향이라 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어디까지나 철학의 영역에서 큰 힘을 내고 있었으며, 중세 많은 철학자들의 아리스토텔레스 자체도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세 철학자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체가 궁금했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철학을 위하여 활용될 아리스토텔레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라기보다는 그의 철학적 개념과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의심한 인물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철학자라 부르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중세철학자 대부분은 스스로를 신학자라 불렀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신학부의 교수이고 신학적 사유가 그의 철학의 출발점이었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학자의 철학이라 하여 중세 철학을 신학의 노예라고 해야 할까? 신학자가 자신의 신학적 논리를 위하여 사용한 그런 수단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여겨야 할 것인가? 사실 이렇게 중세철학을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철학이든 철학은 어떤 ‘조건’ 속에 주어진다. 지금 21세기 우리에게 ‘자본의 힘’과 ‘민중의 힘’ 등에 대한 고민은 하나의 ‘조건’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민중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철학은 그 ‘조건’ 속에서 기능한다. 그러니 지금의 철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과 민중에 대하여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무시한다면 무시의 이유가 합리적이어야 하고, 무시가 아닌 나름의 대안을 가진다면 그 대안의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합리적 설명 없는 고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듣기 좋은 말이지만 논리가 없어서도 안 된다. 이성의 합리적 고민의 산물이어야 한다. 철학은 그렇게 ‘조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서유럽의 중세에서 그 ‘조건’은 그리스도교였다. 그 조건은 이성의 합리적 이해의 자발성을 더욱더 자극했다. 많은 중세 철학의 물음이 그러하다. 지금도 ‘실재론’과 ‘유명론’은 형이상학의 두 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그 ‘실재론’과 ‘유명론’은 중세의 ‘실재론’과 ‘유명론’과 다르다. 그 궁극의 차이는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실재론’이고 ‘유명론’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름의 유명론이라도 14세기 철학자와 21세기 철학자 사이는 다르다. 14세기 철학자는 그리스도교라는 조건 속에서 유명론이란 자신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만들었다면, 21세기 철학자는 적어도 그리스도교라는 조건이 아닌 또 다른 조건 속에서 유명론이란 자신의 형이상학적 입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조건 속에서 그 순간 오롯이 그 순간의 가치로 살아간다. 서유럽의 중세철학은 서유럽의 중세라는 조건, 즉 중세 그리스도교라는 그 순간 살아있는 가치로 제대로 살아있다. 그리고 지금 우린 그 과거를 기억할 뿐, 그것이 21세기 형이상학자들이 야기하는 그것과 같은 수준의 무엇을 기대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중세 유명론이 덜 진화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중세 유명론은 중세라는 조건 속에서 최선이었고, 21세기 유명론은 21세기라는 조건 속에서 최선이었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21세기 지금 우리가 연구할 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그 자체를 복원하려 한다. 그러나 중세 철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조건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이래 저래 변형시키며 철학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처한 조건 속에서 가장 확실한 합리적 사유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칠 2020 08 24

유대칠 (c) 20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