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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메모

철학사 연구에서 '원인'과 '결과' (중세철학 연구 2021 02 16)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2. 17.

플라톤의 <국가> 10권을 읽다 보면,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개체들이 많이 있을 경우 항상 그 개체들 모두가 상응하는 이데아, 즉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한다. (Politeia X 596a) 예를 들어, 책들이라 불리는 여럿에 상응하는 책들의 형상을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공통 본성'(natura communis)이다. 즉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가지는 어떤 것이다. 아마 중세 신학이나 중세 철학에 익숙한 이라면 보편 논쟁을 떠올릴 것이고, 더 깊게 공부한 이라면 실재론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이러한 철학적 고민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이 중세 보편 논쟁의 이유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만이 중세 보편 논쟁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이들 고민의 역사적 결과물이 중세 보편 논쟁은 아니다. 왜냐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지중해 연안의 철학자, 특히 서유럽의 철학자와 고민의 이유가 달랐다. 중세 동서방 교회의 학자들과 같이 보편 논쟁은 교회론과 같은 것에 활용해야 하기에 보편에 대하여 혹은 공통 본성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위일체에 있어서 활용해야 할 이유도 그들에겐 없었다. 즉 플라톤은 전혀 그리스도교 신학적인 고민의 수단으로 공통 본성을 궁리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마찬가지다. 

철학의 역사에서 아니 어쩌면 다른 대부분의 역사에서 과거의 한 사건이 지금의 한 사건의 유일한 원인인 것은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그 책의 한 구절이 이후 보편 논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중세 보편 논쟁의 원인은 여럿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그들에게 현실적 고민들이 원인이기도 했다. 과연 '그리스도신자'는 어떤 존재이고, '그리스도교회'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편 논쟁의 이유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리스도교의 원죄와 관련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편 논쟁에 접어들었고 자신의 보편 논쟁의 입장을 정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세 학자들에게 그들 보편 논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먼 과거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던 현실 속의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은 이미 그 가운데 그 결과로 일어난 고민의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원죄에 대한 고민은 이미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죄가 모두의 죄가 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쉬운 해결책으로 보편 실재론의 가능성이 담겨있다. 즉 결과의 원인 속에 결과는 이미 가능태로 있단 말이다. 중세 학자들은 자신의 현실적 고민, 그리스도교 신자로 혹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여러 고민들이라는 현실적 배경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책을 집어 들고 자신의 내리고 싶은 결론에 따라서 그 결론을 합리화하는 언어를 찾았다. 

중세 보편 논쟁은 지금 형이상학자들의 보편에 대한 고민과 다르다. 공통 본성의 존재 자체에 대한 궁리하는 외관은 같지만, 그 고민을 시작하게 된 이유들이 다르다. 중세 보편 논쟁은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라는 배경 속에서 일어난 현실적 고민이 배경이 되었고, 그 배경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집어 들고 그것을 풀이하며 전개하였다. 지금과 다르다. 지금은 중세 사람들과 다른 시대적 조건 속에서 철학한다. 그리스도교라는 배경 속에서 철학하지도 않고 보편 논쟁으로 교회론이나 원죄 그리고 삼위일체를 해결할 생각으로 철학하지도 않았다. 즉 신학적 사유의 부분으로 철학하지 않는다.

중세 신학자들이 자신의 고민이라 생각한 것들, 즉 보편 논쟁과 학문의 주제에 대한 문제들이 지금은 신학자들의 몫이라기보다는 철학자들의 몫이다. 지금의 철학자가 철학사를 기술하며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지금 시선에서 돌아보기에 중세 신학자들의 보편 논쟁은 철학이란 이름으로 기억되고 기록된다. 지금의 신학자는 신학사를 기술하며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지금 시선으로 돌아보기에 중세 신학자들의 보편 논쟁은 철학자들 만큼이나 자신의 과거로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는다. 오랜 과거의 철학사는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보에티우스와 포르피리우스 등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 속에서 원인과 결과로 철학사를 단선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였지만 사실 중세 보편 논쟁은 그런 단선적 흐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현실에서의 고민이 직접적인 원인이며, 그 직접적인 원인들이 단수적이지 않고 복수적이며, 이러한 이유들을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책을 사용하였다. 신학의 목적을 위하여 말이다. 그들에겐 이 모든 지적 노동은 신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철학으로 기억되지만 말이다. 

유대칠

2021 02 16

(이 글의 모든 권리는 유대칠에게 있습니다. ㅎㅎ YuDaeChil (C)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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