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누군가는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사는 것이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 합니다. 누군가는 사회적 부조리에 대하여 분노하여 거리에 나서 외치는 것이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저런 어지러움은 나의 마음을 흐리는 것이며 그저 조용한 곳에서 조용하게 <성경> 말씀 묵상하는 것이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것이라 합니다. 결국 하느님이 다 이루실 것이니 애써 분노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이 목석이 되는 것이 정말 제대로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라 합니다. 정말 예수님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은 과거의 분이 아니십니다. 멀리 남의 나라 남의 땅에 남과 더불어 있던 분도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 나와 우리를 이루며 더불어 있으십니다. 그것도 항상 지금 그렇게 나와 더불어 있으십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은 나이 들어 힘이 다하지도 않으며 세월의 흐름에 낡아 이젠 쓸모없는 것이 되지도 않으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새롭게 나의 옆에서 나와 더불어 다가오십니다. 때론 나의 아픔에 때론 나의 기쁨에 더불어 있으시면서 그렇게 항상 새롭게 나의 옆에 나와 더불어 우리를 이루며 있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먼 과거 남의 나라 남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입니다. 항상 예수님과 더불어 있음을 위하여 애써야 합니다. 무엇이 그 영원한 말씀의 제대로 된 청자로 있을 것인지 애쓰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청자라는 그 영원한 지혜의 말씀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섰는지 드러낼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바람에 잎새가 흔들리든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영원한 지혜의 말씀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끌림은 그저 가만히 있는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를 이루며 살려는 나의 애씀으로 가능합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우린 저마다의 모습으로 애를 씁니다. 때론 가난한 이의 옆에서 때론 사회적 부조리에 분노하며 때론 내 주변 이웃 가운데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시간에 저마다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더불어 살기 위해 애를 써야합니다. 누가 더 누가 덜이란 마음으로 나누지 않으며 성직자와 목회자 그리고 수도자는 그들의 자리에서 나는 또 나의 자리에서 애를 씁니다. 애쓰는 그 자리에는 항상 아픔이 있고 부조리가 있고 저마다의 이기심에 이리 저리 갈라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마음이 어지럽고 산만하여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픔마저도 예수와 더불어 우리가 되기 위한 애씀입니다. 힘들게 다가서는 것이 더불어 있음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우리와 더불어 하나 됨을 이루셨으니까요.
어떤 시끄러움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나의 마음 편한 곳에서 편하게 예수님과 더불어 있으려 하지는 맙시다. 고난의 자리, 우리 사회 아픔의 자리, 이 사회라는 십자가에 아픈 그 못자리에서 아파하고 분노합니다. 그 아픔과 분노마저 주인에게 다가가는 행복한 길임음 저는 믿어 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지금 더불어 우리를 이루기 위해 애쓰시고 있으신지요?
2020 10 02
유대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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