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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0. 4.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그: 지금 커피 마시러 가자. 

나: 나 지금 일을 하고 있어서 10분만 기다려줘.

그: 그럼 그냥 일을 해. 나는 지금 간다.

나: 급해?

그: 아니,

나:그럼 10분만 기다려다가 같이 가자.

그: 아니 그냥 갈게.

친구의 생각대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스로는 상당히 배려하고 산다지만, 사실 타협은 없습니다. 대화도 없습니다. 그는 대화라고 생각하지만 대화라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생각대로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까요?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생각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다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삽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같은 가족이라도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삽니다. 굳이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것을 찾으려 하는 것도 그냥 말로 그런 것이지, 사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 다릅니다. 

그 차이의 인정은 그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그 상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상식 속에서 사실 내가 남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하고 하지 않건 그는 그의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든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삶의 형태를 어떤 사람과 어떻게 사는지 저마다의 몫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만이 정답을 아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남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며, 자기 생각해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남을 존재론적으로 죽이는 일입니다. 어느 작가가 자신은 집에서 속옷만 입고 다니든 무엇을 하든 자유롭다고 했습니다. 집이란 바로 그런 곳이니 말입니다. 정말 남의 시선 앞이 아닌 우리의 시선 앞에서 세상 가장 편한 모습으로 있어도 그만인 그런 곳이어야 하는 곳이니 말입니다. 서로의 개성이 온전히 편하게 개성으로 있을 수 있는 곳 말이죠. 친구 사이도 각자의 개성은 그와 같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죠. 나의 답은 오답이고 자신의 답만이 정답이며 자신의 답을 따르거나 아니거나 둘 가운데 하나만을 고르라는 이와 대화할 순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대화 속에서 친구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의 5-6년 유사한 일을 하며 서로 협력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요리가 ‘오리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리 집을 약속 장소로 잡는 것을 나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강의하기 전 그리고 다음 일정이 약속되어 있으면 ‘오리’와 ‘닭’을 먹지 않습니다. 오리 고기는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먹지 않을 때도 있고 잘 먹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냥 처음 그 친구와 식사를 했을 때, 훈제 오리를 내가 잘 먹었기에, 나를 오리 고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오리 고기를 그렇게 잘 먹지 않으면 엄청 실망합니다. 자기 생각 밖의 일이니 말입니다. 나름 배려인데… 작년 만남에서도 오리 고기 집에서 만날 때 저는 이미 식사를 했지만 그리 입맛이 없었지만 아주 맛나게 오리 고기를 먹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만족해합니다. 이젠 그 친구가 조금 힘듭니다. 사실 그 친구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습니다. 나도 나로 있는 것이 편합니다. 편하게 만나고 싶으니 말입니다. 

누군가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냥 나의 생각 속에 있는 그 관념을 그 사람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관념 밖이 진짜 그입니다. 나의 생각으로 누군가를 제한하는 것은 어쩌면 그를 매우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정말 대화나 만남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일 뿐일지 모릅니다. 

10분 기다려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말이 그에겐 없습니다. 지금 자신을 따라 나가거나 아니면 가지 않거나입니다.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들까요. 자신도 힘들고 자신의 곁에 있는 이도 힘들고 말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진리, 있는 그대로의 누군가는 나의 관념 속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관념은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를 조금 알아가면서 부서지고 부서져야할 무엇입니다. 그렇게 노력 해도 관념 밖에 그가 있습니다. 그러니 진리의 그림자로 만들어진 나의 관념으로 누군가를 구속하고 정의하지 맙시다. 그것은 그도 힘들게 하고 나도 힘들게 합니다. 거짓을 진리라 아는 나도 나도 모르는 고집쟁이가 되고 거짓 속에 있어야 한다 강요당하는 그도 상처를 입으니 말입니다.  

2020 10 04 

유대칠 암브로시오

김천 직지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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