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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이기는 법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법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0. 3.

조금 이상하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이 불행하다 생각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이상하죠. 조금이라도 성공하여 이루어 그것으로 대단하다 하면 스스로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며 자신의 불행을 당연시합니다. 이상하게 말입니다.

평생 부모의 덕을 보지 못한 친구는 드라마 동백이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언젠가 커피 한 잔 마시며 우연히 친구의 지난 과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아원 시절에서 수년간 힘들게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나이의 양부모와의 삶 그리고 그들의 참 아픈 짓들로 인한 어린 마음에 새겨진 상처들... 친구의 과거를 들으며 저의 마음도 참으로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그런 힘겨움의 끝에 지금도 여전히 그 친구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른 이들이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집에 그리 대단하지 않은 소득으로 중간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전히 친구는 무척이나 가난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참 행복해했습니다. 작고 누추한 공간이지만 그 가운데 채워진 사랑하는 아이와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작아도 너무나 고마운 공간이라는 말에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중간중간 전화할 때 배우자에게 인사처럼 이야기하는 사랑한다는 말도 참 이뻐 보였습니다. 마음으로 담아두면 모른다고 말로 하고 행복해야 아주 조금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이란 말엔 참 행복하게 사랑하는구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적은 소득이라 남들 다니는 외국 여행을 다니는 것은 멀고 먼 이야기이고 가까이 국내 여행을 다니는 것도 힘들지만, 일 년에 한 번 가족끼리 계곡을 찾아가는 기쁨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에 별로 부러울 것 없다는 말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구의 아이가 부러웠습니다. 가난해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행복한 부모로 부터 배울 것이니 말입니다. 사실 행복한 부모는 이기는 법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으로 보아도 사실 가장 큰 가르침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법입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바로 그것을 알려주십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 욕심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 법, 먼저 사랑하는 법을 말입니다. 사실 그것이 일상 속 가장 소중한 복음이니 말입니다. 정말 행복을 담은 일상 속 복음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모의 사소한 일상의 모습으로 자녀에게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린 자녀들 앞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고 우린 돈이 없다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돈입니다. 큰 집이 행복이고 큰 차가 행복입니다. 그런 비교의 말과 삶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이 부족한 곳이니 말입니다. 

자신의 곁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는 자신의 곁에 있는 이들도 지옥으로 이끕니다. 자신의 곁에 사소한 것들에 고마워하는 이들은 행복하게 살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곁에 더불어 사는 이도 천국으로 이끕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그것이 불행은 아닙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지금 나의 공간, 나와 더불어 우리로 살아온 고마운 사랑이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이 너무 고맙습니다. 이제 행복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저도 저의 아이에게 이기는 법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저의 삶으로 말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더불어 있다면 하늘에서와 같이 내가 있는 이곳도 천국임을 믿으려 말입니다. 

2020 10 03 유대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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