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강학회

불행하여라 8 - 행복은 쉽지 않습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0. 31.

<루카복음> 6장 24-26절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10월 31일은 14살 유대철 성인의 순교가 있던 날입니다. 과거 이 땅에는 참 많은 순교가 있었습니다. 아직 소년의 나이엔 유대철과 같은 이로부터 백정을 비롯하여 참으로 다양한 이들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어찌 이리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순교의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사람으로 태어나도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조선입니다. 백정을 생각해봅시다. 노비를 생각해봅시다. 어디 그들의 삶이 제대로 사람일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양반들은 고기를 먹으면서 노비의 애씀으로 누리며 살아가면서 그렇게 자신들을 있게 한 백정과 노비를 사람대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 땅의 슬픈 역사입니다. 역사는 조선의 이런저런 많은 성공을 기억하지만 사실 그 역사의 뒤에는 묵묵히 지탱한 그러나 잊히고 막상 그 시대는 아프고 힘들던 민중들이 있었습니다.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그런 민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품을 선교사도 없이 우리 스스로 맞이하여 받아들였습니다. 그 품 안에는 윗사람도 없고 아랫사람도 없어야 했습니다. 품 안에서 모두는 그저 형제자매이며, 모두는 신앙 안에 한 핏줄이니 말입니다. 예수의 품 안에서 몇몇 조선의 양반들은 기꺼이 백정과 노비를 형제자매로 품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삶의 모습에 사람대접은 기대하지도 않고 차별을 일상으로 여기던 이들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예수의 품 안에선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없이 모두가 하나입니다. 우선 하나가 된 이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홀로 아프던 이들은 더불어 아프니 외롭게 아프지 않습니다. 홀로 울던 이들은 이제 더불어 우니 외롭게 울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많은 이들은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천국은 젓과 꿀이 흐른다고 하지만 사실 젓과 꿀을 누군가만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느님 품 안에서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웃음이 서로의 기쁨이 되는 그러한 곳입니다.

지금 이 땅의 모습을 보면 슬픕니다.  성직자와 목회자 그리고 수도자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그들과 평신도 사이도 어떤 벽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벽을 통하여 자신이 높은 사람임을 드러내려 합니다. 평신도와 다른 수도자, 수도자와 다른 성직자... 사람이 윗사람 아랫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참 아프고 힘든 말입니다. 이런 지금이라면 순교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 안에서도 차별은 일상이니 말입니다. 평싱도 사이도 돈과 권력 그리고 학식을 더 많이 가진 이와 그렇지 않은 이로 나누어집니다. 슬프지요. 교회도 다른 세상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거짓 선생들, 이미 누릴 것을 다 누리며 윗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고정시키려는 이들은 거짓 교회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거짓 교회에서 자신은 또 윗사람이 되려 합니다. 자신들은 하느님의 품에 더 가깝고 너희는 하느님의 품에 덜 가깝다 말하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행동하며 말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분열의 주인공입니다. 더불어 하나 됨을 파괴하는 이들입니다. 홀로 누리려는 이들은 더불어 하나 됨을 부수려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누림, 그 행복, 그 웃음은 예수의 품 안에 참으로 복된 그러한 행복이 아닙니다. 거짓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행입니다. 스스로 불행인지 모르는 불행입니다.

참된 행복은 쉽지 않습니다. 순교자의 삶이 고난으로 시작하여 불행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입니까. 아닙니다. 고난 역시 행복의 한 부분입니다. 고난 없는 행복은 없으며 그 고난으로 이겨야할 우리의 가장 친숙한 힘겨움은 아집과의 다툼입니다. 기득권과의 다툼입니다. 아집도 내리고 기득권도 내리고 예수의 품에서 윗사람도 없고 아랫사람도 없이 더불어 하나 되는 모습에 예수의 존재가 더불어 드러나 있음을 다시 기억해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0 31

<저의 칼럼 모음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www.bookk.co.kr/book/view/92628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www.bookk.co.kr

[한동안 '불행하여라' 하신 예수의 <마태오복음>에 이어서 <루카복음> 6장 말씀을 묵상하며 연재하려 합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서재 금호강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