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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신학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은 분노하라 할지 모르겠습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1. 1.

마르코에 따르면

ΚΑΤΑ ΜΑΡΚΟΝ

 

유대칠 암브로시오 옮기고 풀이함

 

1.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Initium evangelii Iesu Christi Filii Dei.) 

 

2.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나의 심부름꾼을 너희에게 보내니, 그가 너희의 길을 마련할 것이다.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ἐν τῷ Ἠσαΐᾳ τῷ προφήτῃ· Ἰδοὺ ἀποστέλλω τὸν ἄγγελόν μου πρὸ προσώπου σου, ὃς κατασκευάσει τὴν ὁδόν σου· Sicut scriptum est in Isaia propheta: “Ecce mitto angelum meum ante faciem tuam, qui praeparabit viam tuam;)

 

3. 광야에서 외치고 있는 이의 소리는 이와 같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굽은 길을 곧게 만들라!’” (ἐγένετο Ἰωάννης ὁ βαπτίζων ἐν τῇ ἐρήμῳ κηρύσσων βάπτισμα μετανοίας 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vox clamantis in deserto: “Parate viam Domini, rectas facite semitas eius"",)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해 회심의 세례를 받아야한다 선포하였다. (φωνὴ βοῶντος ἐν τῇ ἐρήμῳ· Ἑτοιμάσατε τὴν ὁδὸν κυρίου, εὐθείας ποιεῖτε τὰς τρίβους αὐτοῦ, fuit Ioannes Baptista in deserto praedicans baptismum paenitentiae in remissionem peccatorum.) 

 

5. 그러자 모든 유다 지역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요르단 강물에서 세례를 받았다. (καὶ ἐξεπορεύετο πρὸς αὐτὸν πᾶσα ἡ Ἰουδαία χώρα καὶ οἱ Ἱεροσολυμῖται πάντες, καὶ ἐβαπτίζοντο ὑπʼ αὐτοῦ ἐν τῷ Ἰορδάνῃ ποταμῷ ἐξομολογούμενοι τὰς ἁμαρτίας αὐτῶν. Et egrediebatur ad illum omnis Iudaeae regio et Hierosolymitae universi et baptizabantur ab illo in Iordane flumine confitentes peccata sua.) 

 

6. 그런데 요한은 낙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허리띠를 하고 있었으며,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었다. (καὶ ἦν ὁ Ἰωάννης ἐνδεδυμένος τρίχας καμήλου καὶ ζώνην δερματίνην περὶ τὴν ὀσφὺν αὐτοῦ, καὶ ἔσθων ἀκρίδας καὶ μέλι ἄγριον. Et erat Ioannes vestitus pilis cameli, et zona pellicea circa lumbos eius, et locustas et mel silvestre edebat.) 

 

7.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저의 뒤에 오시는 분은 저보다 더 능력 있으신 분이 오십니다. 저는 그분 앞에서 허리를 꾸부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καὶ ἐκήρυσσεν λέγων· Ἔρχεται ὁ ἰσχυρότερός μου ὀπίσω μου, οὗ οὐκ εἰμὶ ἱκανὸς κύψας λῦσαι τὸν ἱμάντα τῶν ὑποδημάτων αὐτοῦ· Et praedicabat dicens: "Venit fortior me post me, cuius non sum dignus procumbens solvere corrigiam calceamentorum eius.) 

 

8. 저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기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ἐγὼ ἐβάπτισα ὑμᾶς ὕδατι, αὐτὸς δὲ βαπτίσει ὑμᾶς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Ego baptizavi vos aqua; ille vero baptizabit vos in Spiritu Sancto".) 

 

예수를 기다리며 사람들에게 이제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외치는 수도자와 같은 이가 어린 시절부터 저의 머릿속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그냥 씻고 다니란 말이 아닙니다. 샤워하란 말이 아닙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란 말입니다. 우선 세례를 받기 위해선, 즉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선 자신의 죄, 자기 자신의 더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죄가 있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좋음과 나쁨을 매번 판단하며 삽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우리의 좋음보다는 나의 좋음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평생 우리의 좋음과 나의 좋음 사이를 갈등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주 흔히 나의 좋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합니다. 그런데 나의 좋음이 남에게 불행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픔일 수 있습니다. 택배를 피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 정도로 택배는 일상 속 필수가 되었지만 막상 택배 노동자는 아직도 계속 과로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들어도 우린 다시 택배 주문을 합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단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하겠지요. 그들이 과로사 한다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그들과 함께 부조리에 분노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은 없고 그저 택배만 사용합니다. 죽든 살든 신경 쓰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의 편리는 그렇게 살인 공범이 되게 합니다. 얼마나 무거운 죄입니까. 인터넷에 아무렇지 않게 쓰는 댓글에 사람이 죽습니다. 이미 많은 연애인들이 그렇게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참 무서운 사회입니다. 너무나 쉽게 악인이 되어 있으며 단지 직접 칼을 들고 나쁜 짓을 하지 않아서 알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싼 커피는 아프리카 노동자의 희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싼 공산품은 가난한 나라 가난한 노동자의 노력을 빼앗은 것일 수 있습니다. 막상 그들은 커피 한잔의 여유도 없고, 자신이 만든 공산품을 소비할 돈도 없습니다. 그렇게 가난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싸게 소비하기 위해 그들의 노동은 항상 싸야한다는 것이 강요됩니다. 우린 참 나쁜 사람입니다. 과거에 비하여 요즘 우리가 죄인임을 설명하기는 더 편한 듯합니다. 그 만큼 이 사회는 악으로 가득하며 그것은 아주 일상적입니다.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이라면 세례를 받으라는 것과 함께 그 더러움을 보았으며, 분노하라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악행, 나쁜 무관심과 나쁜 이기주의로 아파하는 이들,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그것을 그냥 두는 사회에 분노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 더러움을 떨치는 이 시대의 세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의 길을 미리 닦으며 하늘나라가 다가오고 있다 하였습니다. 단지 물로 씻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이라면 더 이상 더러움을 그냥 보고 있지 않고 분노할 것이다. 그 분노의 방식은 저마다의 삶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노하며 다시 더러워지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 더러움에 사람들이 더 고통당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그 분노는 성령으로 씻음 받은 자가 계속 그 영혼의 깨끗함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분노가 가득한 세상이라면, 지금보다 덜 아프겠지요. 택배 노동자의 죽음 앞에 온 국민이 아파하고 분노한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하늘나라가 다가와 있겠지요. 우리의 죄로 아프고 힘든 이들의 눈물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은 그 눈물을 우리의 얼굴에 가져와 보여주며 울라 할지 모릅니다. 분노하라 할지 모릅니다. 깨끗하게  그 영혼이 맑아지기 위해 그리고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말입니다.  

 

2020 10 31 

유대칠 암브로시오

<저의 칼럼 모음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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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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