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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행복하여라 3 - 과연 어느 것이 행복한 삶일까?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1. 7.

복되어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상속받으리니. (마태오복음 5장 5절)

어린 시절부터 이 말이 참 힘들었습니다. 부드럽고 온화한 이들은 종종 바보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어른들의 말처럼 온화해서는 안 되고 독해야 이 세상을 살아남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가만히 생각하면 결국 목소리 큰 놈의 시대는 잠시입니다. 그들끼리 서로 목소리 크게 싸우다 지워져 가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과거, 민중은 자신의 생명마저 지배자의 손에 맡기고 살았습니다. 죽으라면 죽었습니다. 산 채로 지배자의 무덤에 묻어 버리기도 했지만 분노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면서 노비인 사람은 자기 삶에 대한 어떤 노력에 대한 평가도 없이 그냥 노비라만 살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노비이고 그냥 막살아도 노비이고, 단지 주인에게 쓸모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물건처럼 버려지거나 아니거나 였습니다. 버려진다고 노비가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부조리는 신분을 나누고 학벌을 나누지만 적어도 과거와 같지는 않습니다. 점점 세상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강한 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더 강해지고 있고 어찌 보면 더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중들 역시 더 강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온유한 이는 풀새와 같은 존재입니다. 강한 힘이 아파하고 이래저래 흔들리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풀새밭을 더욱더 크게 만들어갑니다. 나무는 크고 단단하여 어느 정도의 바람에 흔들림 없이 서 있지만 강한 바람이 오면 그만 부러지고 맙니다. 약하니 약한 풀새가 아파하는 동안 나무는 당당해 보이지만 결국 살아남아 더욱더 크게 풀새밭을 확대하는 것은 정말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풀새입니다. 우리 민중은 바로 저 풀새와 같아 보입니다. 노비와 백정은 정말 힘 없이 무력하기만 해 보이지만, 사실 그들에게서 희망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을 향한 조롱 앞에서도 그저 조롱받으며 살던 이들이라 무시해도 그만이라 생각했지만 그 무시받던 곳에서 희망은 일어났습니다. 

양반이 어디 칼을 들고 천한 일을 하는가... 결국 수술을 해야 하는 우리 민중 최초의 첫 서양 의사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된 이는 양반이 아닌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던 백정이었습니다. 박서양, 그는 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우리 민중 최초의 서양 의사, 그것도 외과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앞선 유럽의 선진 기술과 과학을 이 땅 청년에게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했습니다. 백정이 선생으로 우리 민중에게 희망을 가르쳤습니다. 첫 의사이며 그는 우리 민중 최초의 의과대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편한 삶을 뒤로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였고, 무상으로 이 땅 청년을 가르치고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독립군의 군의관으로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백정으로 태어난 그는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무시 속에 살았습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시대는 그를 조용한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선 그 시대의 아픔, 백정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아픔, 부조리한 권력의 폭력에 대한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이 희망이 되어 그는 새로운 시대의 스승이 되고 독립군의 군의관이 되었습니다. 편하게 친일파가 되어 의사로 그리고 의대 교수로 배 부르게 살 길이 그에겐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우린 박서양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과거 드라마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우리에게 고마운 이로 살다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그 뜻은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고 지금 우리 역사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온유하지만 크게 드러나 두드러지지 않지만 그는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 이 땅의 희망이 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하느님께서도 분명 복되다 하실 것입니다. 

같은 이름의 또 다른 박서양이 있습니다. 백정이며 의사인 박서양보다 10살 더 많은 1875년 태어난 박서양은 조선의 귀족이고 일제강점기에도 귀족으로 살았습니다. 아들이 없어 아들을 입양하였는데 그 아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일본이 주는 귀족 작위를 거부한 박승방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행한 반일 행위로 인하여 마지막엔 귀족 작위를 빼앗기기도 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저 누리며 큰소리치며 살기를 원한 친일파 박서양과 백정으로 태어나 그 시대의 아픔을 알고 그 시대의 아픔을 안아주는 희망이 된 백정 의사 박서양, 과연 하느님의 품에서 하느님의 나라에서 웃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행복은 누리며 사는 행복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행복을 다시금 묵상해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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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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