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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행복하여라 7 참 평화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1. 14.

복되어라,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리니. (마태오복음 5장 9절)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힘센 사람이 등장하여 힘없는 사람 여럿을 조용하게 만들면 그냥 밖에서 보면 평화가 이루어진 듯이 보입니다. 한 명의 주인과 여러 명의 노비들이 사는 것도 그러할 것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은 과연 평화로운 나라였을까요? 양반들에겐 평화의 나라였을지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당파 싸움을 했지만 그런 정치권력 싸움 없이 지내면 큰 문제없이 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많은 노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양반끼리 일어난 여러 소송 가운데 하나가 노비 소유권입니다. 서로 다른 주인의 노비들 사이에서 아기 노비가 태어나면 남노비 주인의 소유인지 여노비 주인의 소유인지를 두고 법적으로 다툰 것이지요. 사람을 두고 누구의 것인지 다투는 것이 참 슬픕니다. 노비들은 이름에 성씨가 없습니다. 성씨가 없다는 말은 계통이 없단 말입니다. 노비는 죽으면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며 제사를 지낼 줄 이가 없습니다. 성씨가 없어서 2-3 세대를 지나가면 잊히고 맙니다. 자식이 다른 집에 팔려도 잊힙니다. 성씨가 없다는 말은 제사의 대상이 아니란 말이고 묘를 굳이 잘 쓸 필요가 없단 말이고 죽은 이후 기억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조선 그 수많은 노비들이 죽었지만 지금 노비의 무덤으로 남은 것은 없지요. 그들은 죽으면 거적에 말려 버려졌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조선은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을지 모릅니다. 일제 시대 역시 그냥 외향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고개 속이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평화로운 조선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친일 시인들이 시를 보면 조선은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요. 그러나 과연 정말 제대로 평화로운 가요?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하는 동안 외국인이 보면 불편하다 하여 가난한 이들의 판자촌으로 공권력의 힘으로 부셔버렸습니다. 성화가 지나는 동안 땅에 굴을 파고 그 속에 가난한 이들은 숨어 있었습니다. 당시 정일우 신부님의 분노와 애씀은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후로도 그들 사이 돈 문제로 피해자들 사이를 다시 갈라놓게 만든 이야기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평화로운 성화 봉송과 아시안게임 그리고 올림픽... 그런데 정말 평화로운 시간이었을까요? 아프고 아픈 침묵의 시간일 뿐, 사실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나누어져 침묵이 강요당하는 곳에선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강요된 침묵이지 그것이 평화는 아닙니다. 평화는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없이 서로 평등해야 합니다. 서로 평등하기 위해선 나의 아집 밖에 홀로 외롭게 아파하는 이의 그 아픔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를 안고 우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 시끄러울지 모릅니다. 윗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은 조용히 침묵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서로가 서로의 억울함에 분노하며 소리치는 공간이 참으로 불편할 것입니다. 자기들만 조용히 평화를 누릴 수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듯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된 평화는 바로 그러한 애씀, 시끄러워도 같이 울고 서로의 눈물에 손수건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50년 전 11월 13일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여공들의 고난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은 평생 제대로 된 집에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자신도 교육이라곤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그리고 힘겨운데 그는 따스한 붕어빵을 사 들고 가난하고 어린 여공의 아픔을 걱정하며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부조리한 상황을 제법 상세히 조사하였고, 심지어 이런 부조리를 극복한 대안의 착한 기업을 궁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좋은 말만 가득하지만 현실엔 히 없는 그 노동법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어린 여공의 눈물이 덜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그런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빛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우리를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글공부만 하던 대학생도 세상 등 돌리고 기도하던 신부와 복사 그리고 수도자도 힘없는 인생이라 침묵하자던 노동자도 더불어 외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한 목숨(spiritus)은 그의 몸에 구속되지 않고 우리 전체의 목숨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이제 전태일은 한 사람이 아닌 아프고 힘든 모든 곳의 목숨, 그 자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시끄럽습니다. 몸에 불을 붙인 곳에, 자신의 아집에 불을 붙인 곳에 어찌 침묵이 있을까요. 큰 분노와 큰 울음이 있을 것이고, 부재된 희망 가운데 더 간절한 희망에 대한 외침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끄럽지만 평화는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집을 벗어 버리고, 그 유한성을 벗어버리고 전체로 녹아들어 무한한 목숨함이 된 이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 품에 안겨 있을 것이라 믿어 봅니다. 

오늘 성씨 없이 무덤 없이 기억하는 이 없이 사라진 조선의 많은 노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누군지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은 제주 곳곳에 묻힌 아픔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한국전 당시 아군에 의하여 학살당한 경산 코발트 광산의 3000여 아픔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1980년 광주의 비극, 그 사악한 폭력에 죽어간 광주의 아픔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사회 곳곳의 노동 현장에서 죽어간 아픔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공권력에 죽어간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

그리고 평화를 기다리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분노하고 애쓰는 삶을 다짐해 봅니다.

신앙이란 수동적으로 주어지길 떼쓰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위해 애쓰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 다짐해 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1 14

경향신문 사진자료 : 1988년 올림픽 준비를 위한 강제 철거에 분노하는 장면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 혹은 국민은행 96677343443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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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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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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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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