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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나홀로 없음이 더불어 있음이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1. 29.

나는 어느 철학자의 철학보다 나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들어야한다는 그의 이야기보다 내가 들은 그의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나의 함석헌도 문익환도 권정생도 남이 들은 이야기와 다를 수 있으며 들어야한다는 이야기와 다를 수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거나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결국 그들을 만나 내가 들은 이야기와 내 삶에 다가온 이야기들을 적고 말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다가가기보다 내 삶에 다가온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다. 힘든 내 삶에 단비가 되었다면 누군가에게도 약간의 단비가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그것이 나를 이끌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쉼없이 부서지며 있음에서 없음을 향하고 있다. 그 없음은 다시 무엇인가로 가득 차겠지만 다시 또 비워 없어진다. 그렇게 나는 흙이 되고 물이 되고 공기가 되어간다. 처음 있던 그대로 나의 진화는 다시 돌아간다.
모든 진화는 결국 돌아온다. 씨앗은 자기 진화를 통해 거대한 나무가 되지만 다시 씨앗을 남기고 사라진다. 자기 사라진 자리에 자기 아닌 것들의 풍성을 남기고 자기 진화를 마무리한다. 죽은 나무의 부활은 우리의 생명으로 일어난다. 다람쥐의 생명이 되고
이런저런 벌레들의 생명이 되고
잡초의 생명이 되고
나비와 메뚜기의 생명이 된다.
없음은 있음이고 있음은 없음이다.
나홀로 없음이 우리 더불어 있음이고 나홀로 있음이 우리 더불어 없음이다.
이것이 이 우주의 뜻, 바로 로고스다.
폭포수의 떨어짐은 바다로의 이행이고 그렇게 자기 진화, 자기 변화를 이루며 그 사이 그 주변 수많은 식물의 생명이고 여러 사람의 기쁨이 된다. 바다로 가서도 쉼없이 내어줌으로 자기 쓸모를 드러낸다.
이 신비는 저밖 초월된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 일상 속 삶에 녹아있다.
바로 나이고 너이고 우리다.
이것이 내가 함석헌과 문익환 그리그 권정생에게 들어 도움 받은 내 삶에서 느껴 그리는 우주의 숨결이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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