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의실 102호실

사람만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2. 2.

사람만이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농사를 해보면 압니다. 작은 땅이지만 그 가운데 수많은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 생명이 어떻게 협력하는가에 의하여 농사의 결실이 결정됩니다. 흙에 미생물이 없고 공기가 탁하고 물이 썩은 공간이라면 그리고 배추벌레들이 흙을 갈아엎지 않고 작물의 잎사귀를 뜯어먹고 흙의 질을 더 좋아지게 하지 않으면 그곳은 자연적으로는 농사 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공 비료와 농약 등으로 자연적으로 농사 지을 수 없는 곳에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그 대가로 이런저런 자연재해를 입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들은 자연의 볼레들과 물, 공기, 흙 등과 더불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 자연입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사람들은 자연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자연이 무슨 일을 하는가 의문하며 무시해 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자연은 쉼 없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를 내려주고 바람이 불어주기도 했습니다. 산의 바위와 나무는 산사태를 막아 우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생명이 죽지 않고 살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삶에 일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저 사람들에 의하여 이용되어야 할 수동적인 존재로만 생각하였지만 사실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우리와 더불어 우주를 이루는 벗이었습니다. 

스피노자라는 근대의 철학자는 자연도 신의 발현이며 그 점에선 우리와 다르지 않다 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자연물은 그대로 신의 발현, 신이 그렇게 드러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우리만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풀 한 포기로 모두 신성한 존재란 말입니다. 현대 철학자 제인 베넷(Jane Bennet, 1957-)은 스피노자와 라투르의 영향 속에서 자연 모두를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물도 흙도 공기도 배추벌레도 사마귀도 지렁이도 모두 능동적으로 일을 하며 우주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 사람들에게 자연은 사람들의 이용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파괴하고 그곳에 큰 건물을 올리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며 자신들의 이득을 더 챙기기도 했습니다. 사람만이 능동적이고 사람이 아닌 이들이 수동적인 것은 사람의 사회만이 능동적이고 자연은 수동적이란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나만이 능동적이고 나 이외 존재들은 수동적이란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나누어짐, 나와 남으로 사람과 자연을 구분하고 오직 나와 사람만이 능동이고 남과 자연은 수동이란 생각은 인류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 지웠고 나란 존재가 남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지었습니다.

사실 자연의 능동성을 우리는 흔히 경험한다. 자연은 절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의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주변에 존재하는 환경과 사물 그리고 이런 저런 조건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며 행위합니다. 작은 땅에 배추벌레는 누군가에게 작고 징그러운 것일 수 있지만, 사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작은 몸짓은 흙을 갈아엎고 작물의 잎사귀를 먹어 똥을 싸 토양의 질을 풍부하게 합니다. 지렁이도 마찬가지고요. 지렁이도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하면서 다른 생명들이 잘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듭니다. 무당벌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그들의 일을 통하여 숲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우린 밭에서 일하는 자가 그저 농부 한 사람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곳엔 다양한 작은 생명들과 이런저런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서로 혐력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 모두가 사실 능동적인 그 농사의 주체인 것이지요. 저마다 다른 목적의식으로 일을 하지만 저마다 다른 목적의식이 하나의 조화 속에 있을 때, 저마다 행복하여 저마다 보람을 누리는 곳이 됩니다.

베넷은 모든 사물은 씨줄과 날줄과 같이 보갑하겨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그 연결망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저 그 연결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사람이란 부분만이 주체이고 다른 모두를 대상인 것도 아니고, 사람만이 능동이고 다른 모든 것이 수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자연계라는 거대한 연결망의 한 부분이란 말은 절대 사람을 초라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두를 높이는 말입니다.

오늘 시간 사람만이 정치의 중심이었습니다. 사람만이 주체이고 다른 모든 것을 활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넷은 이를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떤 물질도 홀로 행위하지 않으며 거대한 연결망 속에서 더불어 행위한다면, 저의 생각에서도 더불어 행위하는 쌍방이 모두 주체가 되어야 정당합니다. 주인과 노예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오랜 시간 우린 주인과 노예와 같이 사람과 자연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노예제가 사라짐으로 민주주의가 가능했듯이, 이제 제대로 자연 전체를 위한 정치적 질서를 만들기 위해선 사람 아닌 모든 자연물의 권위도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사실 베넷과 같은 이들의 주장이 쉽제 우리 일상에 녹아들지 않는 것은 사람 아닌 것에 대한 존엄의 문제는 결국 나 아닌 이들에 대한 존엄의 문제가 됩니다. 나에겐 지렁이나 나 아닌 사람이나 모두가 나 아닌 것이란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지렁이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더 나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 아닌 것의 권위와 존엄의 문제는 결국 나 아닌 것의 권위와 존엄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더불어 있는 서로는 그 서로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라도 저마나 주체입니다. 그것이 받아들여질 때, 생태계에 대한 정말 제대로 된 정치와 신학 그리고 철학이 자연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듯합니다. 베넷의 생각... 저기 저 바위와 나무 그리고 벌레와 호수 그리고 강물도 당당한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무시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더불어 있음의 존재론 역시 바로 그 점에서 자연은 더불어 있는 주체이며 사람과 나와 마찬가지로 당당한 존재계의 주체란 점,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자연 그 자체가 바로 사람이고 사람 아닌 것에 대한 무시는 곧 나에 대한 무시가 될 것이니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나는 나 아닌 것이고, 그 점에서 나 역시 그에게 사람 아닌 무엇과 같은 처지일 것이니 말입니다. 

사람만! 나만! 일하는 것 아닙니다. 우주는 저 작은 미생물에서 거대한 천체들이 모두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결실입니다.

유지승

2020 12 02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 혹은 국민은행 96677343443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위의 두 권은 저의 칼럼 모음집과 묵상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두 권의 책은 저의 저서입니다. 더불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www.bookk.co.kr/book/view/94794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홀로 외로운 시대, 홀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불행한 시대, 정말 제대로 행복한 것을 무엇인가를 예수의 <주님의 기도>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묵상 모임집이다. 더불어 있음의

www.bookk.co.kr

www.bookk.co.kr/book/view/92628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www.bookk.co.kr

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93690705

 

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www.kyobobook.co.kr

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55401217&orderClick=LOA&Kc=

 

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www.kyobobook.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