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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혜의 조선 후기 철학사 2: 1709년 현실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등장하였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2. 29.

조선 후기 철학사

강의 2: 1709년 현실에 대한 두 가지 시선이 등장하였다.

 

효종의 시대부터 숙종의 시대까지 정계와 학계를 누비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제자들이 1709년 충청도 보령의 한산사에 모였다. 송시열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역사를 이해함에 도움이 된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그는 전적으로 주자의 학설을 계승하는 것을 강조하였고, 자신이 그러한 인물이라 자부하였다. 조광조(趙光祖, 1482~1519)에서 이이(李珥, 1536~1584) 그리고 김장생(金長生, 1548~1631)으로 이어지는 조선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어가는 사람이라 스스로 자부하였다. 그런 그에겐 유명한 제자들이 있었다. 권상하는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1674년 숙종의 즉위에 1659년 효종의 승하 때 자의대비의 복제가 문제가 되었다. 이때 송시열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유배를 가게 된다. 이때 그는 학문과 교육에 전념한 것을 다짐하게 된다. 1689년 다시 송시열은 제주로 귀향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사약을 받게 된다. 이때 권상하는 스승 송시열의 임종을 지켰으며 의복과 서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권상하는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근대를 파견한 명나라 신종(神宗)과 명나라가 망하자 자살한 의종(毅宗)을 제향 하였다. 이와 같이 권상하는 자신이 송시열을 이어가는 학통의 인물이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본 인물이다. 이러한 권상하에게도 유능한 제자들이 있었다. 바로 한원진(韓元震, 1682~1751), 이간(李幹, 1576~1637), 윤봉구(尹鳳九, 1681~1767), 최징후(?~1715), 성만징(成萬徵, 1659~1711), 현상벽(玄尙璧, ?~?), 채지홍(蔡之洪, 1683~1741), 한홍조(韓弘祚, ?~?) 등이다. 이들 가운데 호락논쟁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은 한원진과 이간이다. 이간은 한원진보다 5살이 더 많았다. 이간은 서울 인근의 학자들에게 배우고 더불어 공부하다 31살이 되어서야 권상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한원진은 나이가 어렵지만 21살이 되던 날 권상하의 제자가 되었다. 그렇기에 한원진은 비롯 5살이 더 어렵지만, 5년 더 빨리 권상하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권상하의 제자들은 마음의 문제와 사람과 사람 아닌 것들의 관계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논의는 대체로 한원진이 이끌었다. 이간이 그 가운데 들어가 한원진의 견해에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논쟁의 배경을 보자. 

숙종이 보위에 오르고 35년이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역시 70여 년 전의 과거였다. 시간이 지나자 조선의 양반들은 자신들의 지난 잘못보다는 이상한 자아(自我) 도취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의 공격에도 망하지 않았지만 명나라는 망해버렸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왜 조선은 살고 명나라를 살지 못했는지 따지며 스스로의 위치를 긍정하기 시작하였다. 의병과 같은 민중들의 노력, 그 덕으로 조선이 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시 조선 양반의 속마음이었다.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이 유교의 정수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들이 고민한 예법이 이젠 조선 전체를 지배하는 논리가 되었고, 대동법과 같은 자신들의 정책이 성공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은 스승 권상하가 송시열의 뜻을 받아 이미 사라져버린 과거의 나라 명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만동묘(萬東廟)를 세웠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창덕궁 뒤뜰에도 대보단(大報壇)이 세워져 예를 다하였다는 것, 바로 그러한 모습이 조선을 탄탄하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이젠 사라진 명나라에 대한 예의 속에 그들이 정치적으로 바란 것은 도덕적 명분 없이 도망 다니며 그 가운데도 권력 욕심을 내던 자신을 향한 양반 아닌 이들의 예의였다.

1709년에 보령에 모인 권상하의 제자들은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 논의의 공간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생각들도 채워졌다. 이간은 아직 발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 즉 고유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음, 즉 ‘미발지심(未發之心)’의 상태는 순수한 도덕만이 존재하기에 그저 선(善)하다 하였다. 혹시라도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아직 발하지도 않은 사람의 마음에 함께 있을 순 없다 하였다. 쉽게 말해서, 아직 발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는 그저 도덕심(道德心)의 상태로만 있다는 것이다. 이 도덕심은 리(理)가 발현한 ‘본연지성(本然之性)’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원래 마음, 아직 발하지 않은 그 원래의 본성은 선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장에 이어서 이간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사이의 차이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과 같은 것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이 모두 동등하게 받은 것일까? 그는 ‘리’의 보편성에 집중했다. 도덕심의 권원인 ‘리’가 모든 존재에 두루 있음을 강조하였다. 사람은 인의예지신과 같은 덕성(德性)이 조화롭게 온전히 잘 갖추고 있다며, 사람이 아닌 존재들은 조화롭지 못하게 치우쳐져 있다 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리’의 보편성에 따라서 모든 것에 ‘리’가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조선 사회에서 ‘윗사람’인 양반과 ‘아랫사람’인 양반 아닌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단 말이 될지 모른다. 모두가 ‘리’의 보편성에 따라서 ‘리’를 가진다면 말이다. 명나라의 한족과 청나라의 만주족 사이에도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리’의 보편성에 따라서 형이상학적 차이는 없단 말인가? 적어도 이간의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간다면 ‘그렇다’고 해야 한다. 

한원진의 생각은 이간과 달랐다. 그는 ‘리’만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기(氣)’의 관점에서 보자 한다.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은 ‘기’가 다르다. 그 ‘기’의 차이에 의하여 모든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다르게 된다. 그렇다면 각각의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처지는 기질지성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한원진의 생각이다. 여기에서 간단하게 ‘리’와 ‘기’에 대하여 조금은 과격하게 단순화하여 이해해보자. ‘리’는 우주 전체의 ‘이치’다. 그 우주 전체의 이치가 구체적인 성(性), 즉 본성(本性)이 되기 위해 ‘기’, 즉 ‘기운’과 함께 해야 한다. 우주의 ‘리’가 남자가 될 ‘기’를 만나면 ‘남성’이 된다. 그리고 ‘여자’가 될 ‘기’를 만나면 ‘여성’이 된다. 이렇게 ‘성’이란 ‘리’와 ‘기’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리’의 보편성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본성을 가진 모든 것은 ‘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간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동시에 ‘기’와 무관하지도 않다. 그렇다면 한원진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리’의 보편성인가 ‘기’의 개체화인가에 따라서, 즉 어디에 더 큰 강조점을 둘 것인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한원진은 모든 본성이 ‘리’와 ‘기’가 합하여 된 것이며, 가운데 ‘기’에 의하여 서로 다른 존재가 됨을 강조했다. ‘기’의 차이에 의하여 사람들도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질’이 나쁜 이가 있고 ‘기질’이 좋은 이의 차이가 있단 말이다. ‘사람이 아닌 것’에 도덕심, 즉 ‘리’가 아예 무관하다 할 순 없지만 근본적으로 ‘리’의 보편성에 근거한 논리보다 한원진은 ‘사람 아닌 것’에 대해선 결핍의 시선으로 본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도덕심, 즉 ‘리’가 무관하지 않아도 결핍의 상태로 있단 것이다. 사람 사이의 문제에 적용해보자. ‘양반’과 ‘양반 아닌 이’들은 기질의 차이를 가진다. 그에 따라서 양반이 충만이 가지는 것은 양반 아닌 이는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즉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형이상학적 차이로 설명해냈다.  

이간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리’의 보편성에 집중했다면, 한원진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 사이의 기의 개체화에 의한 차이에 집중했다. 같은 리에 머문다는 논리를 이간은 강조하였고, 서로 다른 기질을 가진다는 논리를 한원진은 강조하였다. 이렇게 1709년 권상하의 제자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입장을 이 세상에 내어놓으며 마쳤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은 당시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그리고 진단하는 양반들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시선이었다. 그렇게 1709년 호락논쟁은 시작되었다.  

허수 유식혜

2020 12 29

신간! 유대칠이 번역한 쿠사누스의 <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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