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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혜의 조선 후기 철학사 3: 조선의 현실 더 선명하게 나누어지다.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0. 12. 30.

조선 후기 철학사

강의 3: 조선의 현실 더 선명하게 나누어지다.  

1709년 충청도 보령의 한산사에 모인 권상하의 제자들은 당시 조선 사회의 현실에 대한 뚜렷하게 구분되는 두 가지 정치-존재론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위계의 질서를 더욱더 단단하게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다 더 유연한 모습으로 존재론적 평등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 두 가지는 조선 후기 호락논쟁의 두 갈래 입장들이 된다. 그 가운데 ‘호론’은 권상하-한원진의 학맥으로 이들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본성은 다르다는 결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정치-존재론스럽게 이야기한다면, ‘양반’과 ‘양반 아닌 이’의 본성은 다르다는 결론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앞선 강의에서 소개한 이간의 입장을 긍정하는 ‘낙론’의 입장은 달랐다. 김창협(金昌協, 1651~1708)과 김창흡(金昌翕, 1653~1722) 형제 그리고 박필주(朴弼周, 1665~1748)와 어유봉(魚有鳳, 1672~1744)의 학맥으로 이들은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본성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논쟁은 보령 한산사의 논쟁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이후 서울에서도 논쟁은 이어졌다. 서울에서의 논쟁에선 더욱더 논쟁의 판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이현익(李顯益, 1678~1716)이다. 그는 33살에 훗날 영조(英祖, 1694~1776)가 되는 연잉군(延礽君)의 선생이 된 인물이다. 불행히도 그는 영조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죽었다. 그는 송시열의 서울 지역의 제자로 유명했던 김창협의 제자였다. 서울에선 감창협의 제자 사이에 크지 않은 논쟁이 이어졌다. 그 논쟁에선 이현익은 한원진과 비슷한 주장을 하였고, 이현익과 논쟁한 박필주와 어유봉은 이간의 주장과 비슷하였다. 여기에서도 입장들이 나누어진 것이다. 

이간과 한원진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이 둘의 스승인 송시열의 제자 권상하에서 입장을 청하였다. 여기에서 권상하는 한원진의 입장이 옳다고 하였다. 그렇게 충청도에선 권상하의 입장으로 뜻이 모여졌다. 그러나 서울은 달랐다. 서울에선 송시열의 또 다른 제자인 김창협이었다. 하지만 김창협은 이미 1708년에 사망하여 직접 이 논쟁에 참여할 수 없었고, 그의 동생 김창흡이 이 논쟁에 개입한다. 그는 박필주와 어유봉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이렇게 호론은 권상하-한원진 학맥을 기반으로 인물성이론, 즉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본성이 다르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뜻을 모았다. 낙론은 김창흡-박필주·어유봉의 학맥으로 인물성동론, 즉 ‘사람’과 ‘사람 아닌 것’의 본성이 같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뜻을 모았다. 선생들의 개입으로 이렇게 더욱더 선명하게 조선 후기 성리학에서 호론과 낙론은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여기에서 자세히 보면 조금 난감한 이들이 있다. 권상하의 제자이지만 권상하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이간과 김창협의 제자이지만 역시나 인정받지 못한 이현익이다. 이들은 각각의 진영 속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어 더욱더 견고한 논의의 논리를 마련하게 해 주었지만 막상 자신들은 각각의 진영에서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송시열과의 관계를 보자. 지금의 눈으로 보면 권상하가 정말 제대로 송시열의 제자다. 김창협은 송시열의 제자라고 하지만 사실 직접 가서 배움을 받은 제자라기보다는 편지를 통하여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배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며 배운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창협의 동생인 김창흡은 전국을 누비던 방랑 지식인이었다. 그는 불교와 도교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간접적으로도 송시열의 제자가 아니었다. 김창협과 김창흡 형제의 진정한 스승은 이황과 이이의 학설을 종합하려 한 조성기(趙聖期, 1638~1689)라고 할 수 있다. 조성기는 누군가에게 배우기보다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중시했다. 바로 그러한 태도를 형제는 배웠다.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의 제자들 사이 일어난 논쟁에서 송시열의 직계 제자인 권상하의 입장은 큰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인물성이론의 권위였다. 그러나 권상하에 비하여 송시열과 큰 직접적 배움을 받지 못한 김창협의 제자들이며, 직접이든 간접이든 송시열의 제자가 아닌 거기에 불교와 도교에도 관심을 가진 방랑 지식인인 김창흡의 뜻으로 단단해진 것이 인물성동론이다. 직접 보며 배운 스승의 뜻을 인물성이론으로 생각한 권상하는 이것이 주자-이이-송시열 그리고 자신으로 이어지는 학통의 사상이라 확신하였다. 그에 대하여 자유로운 방랑 지식인 김창흡는 조선 양반이란 주체로 나와 나 아닌 것의 본성이 같다고 했다. 왠지 자유로운 그의 삶의 여정과 인물성동론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청나라를 오랑캐의 나라이며, 명나라에 대한 예의를 강조한 송시열에게 사람 사회의 위계는 매우 경직적이다. 그런 그에게 인물성이론은 매우 어울리는 존재론적 입장으로 보인다. 

철학의 주체를 다시 물어본다. 사실 이 고민에서 철학의 주체는 조선 양반 남성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반성으로 사유하며 조선 양반 남성인 존재와 조선 양반 남성이 아닌 존재의 본성을 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명나라를 기억하라는 조선 양반 남성의 외침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무능했던 자신들이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이 조선을 지켜낸 중심 세력으로 자신들을 기억하라는 외침일 수 있다. 그런 외침의 또 다른 변주일 수 있다. 적어도 지금 나에겐 그렇게 들린다. 그리고 그렇게 조선이 명나라의 무너짐에서 버틴 것은 성리학의 질서라는 생각에 무너진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더 강하게 성리학의 질서가 강조하였고, 이런 가운데 아예 존재론적으로 조선 양반 남성과 조선 양반 남성이 아닌 이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정치-존재론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 바로 ‘호론’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낙론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청나라라는 대국(大國)을 인정하자는 논리의 변주일 수 있다. 이제 있지도 않는 명나라를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홍대용과 박지원과 같은 이들, 현실 청나라의 존재를 인정하며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라 불리는 이들은 낙론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서얼을 친구로 분 양반이 가능한 것도 사실 존재론적으로 조선 양반 남성과 조선 서얼 남성은 본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론은 다르다. 호론은 위정척사 운동과 강한 신분제 사회를 옹호한다. ‘조선 양반 남성’과 ‘조선 서울 남성’은 존재론적으로도 다르기에 벗이 되기도 힘들다. 하물며 ‘조선 양반 남성’과 ‘조선 양반 남성이 아닌 이’ 사이도 친구가 되기 쉽지 않다. 존재론적으로 격이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조선 양반 남성, 그들도 서서히 무너지는 조선을 알았을 것이다. 그 가운데 그들은 더욱더 강력한 성리학의 국가로 조선의 마지막을 막으려 했을지 모른다. 아니, 더 솔직하게 자신들의 마지막을 막으려 했을지 모른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는 친일파가 되었을 것이고, 더욱 더 치열한 이론으로 무장한 호론은 일본과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논리를 넘어 솔직하게 자기 방어를 위한 논리로 호론을 사용하던 이들은 결국 자기 지위와 소유의 방어를 위해 이젠 일본을 이용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정말 호론의 철학적 결실을 그대로 믿은 이들은 민중 일반이 평등 조선을 만들자는 동학 혁명도 싫고 자신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한 일본도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평등 사회를 주장한 동학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군을 불러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18-19세기 조선의 마지막 성리학적 고민 속에 이미 보이는 20세기라는 조선의 미래일지 모른다. 

유식혜

2020 12 29

신간! 유대칠이 번역한 쿠사누스의 <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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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어 계신 하느님에 대한 대화

르네상스 혹은 후기 중세 철학자이며 합리적 신비주의자인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간략한 작품이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신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대하여 철학적이고 신학적으로 접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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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 혹은 국민은행 96677343443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위의 두 권은 저의 칼럼 모음집과 묵상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두 권의 책은 저의 저서입니다. 더불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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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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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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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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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대한민국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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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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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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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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