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의 원인과 무엇의 결과는 어쩌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의 서로 다른 바라봄의 차이다. 예를 들어, 창문이 열린 것은 열어서 열린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연 것과 열린 것은 엄밀하게 동시다. 열어야 한다는 생각은 엄밀하게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그 생각은 변할 수도 있었고,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좌절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엄밀하게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열린 결과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열었다는 동작이고, 이 동작은 결과와 동시다. 즉 하나의 사태는 그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행위와 동시에 이 세상은 창조되었다. 즉 능동과 수동은 동시에 일어난다. 나의 팔을 내린 것과 내려진 것이 동시이듯이 말이다. 즉 원인과 결과는 시간적 선후를 필연적으로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나는 철학자다. 이것은 결과이지만 그 결과는 원인과 동시다. 원인에 앞서 있지 않다. 내가 철학자로 있겠다는 마음과 그 마음의 현실화가 일어났기에 나는 철학자로 있을 수 있다. 원인과 결과로 보이지만, 철학자로 있겠다는 마음의 현실화와 철학자로 있음은 동시다. 철학자로 있겠다는 애씀이 없다면 철학자로의 존재는 바로 정지되고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철학자로 있겠다는 그 마음, 그 마음의 구체적 드러남을 위한 애씀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철학자로 있음이 더불어 있는 우리 가운데 뜻으로 다가올 때 나의 존재는 철학자로 있겠다는 자기 본질 규정을 다짐하게 된다. 자기 본질 규정의 다짐은 우리 가운데 뜻을 품은 것으로 나에게 다가올 때 가능할 수 있다. 물론 그 우리의 수가 적을 수 있다. 때론 우리의 존재가 미래를 향한 가능태일 수 있지만, 항상 그 뜻의 공간은 우리이길 기대하고 희망한다. 철학자로 있는 것이 우리 가운데 뜻을 품은 것으로 다가옴으로 철학자로 있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뜻을 품는 것과 마음에 품게 되는 것은 시간의 선후를 가진다기보다는 동시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운데 뜻있는 것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그 순간이 나란 존재가 철학자가 되는 순간이며, 그 둘은 시간적으로 선후를 가지고 있지 않고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원인이고 결과이다.
나는 더불어 있는 이들에게서 나를 본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내가 무엇인가를 알아간다. 결국 그 마지막 판단의 몫은 나이지만, 나만이 홀로 있지 않고 더불어 있는 이들이 나의 거울이 되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 있는 이들에게 뜻을 품은 나, 남이 아닌 나, 우리 가운데 그들에게 남이 아닌 나이기 위해 나는 결단한다. 더불어 있는 그들과 더불어 있음을 결단한다. 그 결단이 지금의 나가 된다. 즉 나와 더불어 있는 우리와 그 우리 속의 나는 나란 존재의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다.
돌 하나의 원인은 지금 돌을 이루며 더불어 있는 수많은 인연들이다. 돌의 질료적 측면만도 아니고, 돌의 형상적 측면만도 아니다. 돌이 더불어 있는 모든 인연인 그 돌의 지금 여기 무엇임의 이유가 된다. 능동인이 되고 때론 목적인이 되기도 한다. 신을 믿는 이라면 지금 신이 그 돌이 존재하길 원하기에 돌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돌이 있기 원하는 그 순간과 돌의 현실적 존재는 동시다. 지금 나의 존재는 오랜 과거 신의 생각이나 계획함이 그 원인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신과 나의 존재가 하나 되어 이루어진 원인이며 결과이다.
내 존재의 고향은 오랜 과거가 아니다. 신의 정신 속에 있지 않다. 홀로 외롭게 있던 신의 관념 속 무엇이 내 존재의 원인이 아니다. 원인과 결과는 지금 이 순간 동시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내 존재의 원인은 오랜 과거 신의 관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와 더불어 있는 우리 됨의 순간들이 내 존재의 원인이며, 동시에 그 가운데 나, 그 원인의 결과로 나는 그 원인과 동시에 더불어 있다. 나는 과거 만들어진 무엇의 현실적 구현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야기되고 결과되는 원인과 결과의 '동시체'다.
유대칠
2021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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