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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철학메모

중세 철학이고요? 중세 신학 아닌가요! (유대칠의 중세철학)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12. 5.

'중세 철학'이라고요? '중세 신학' 아닌가요!

 

사실 과거의 사상은 이후 역사학자들에 의하여 기억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의 방식에 따라서 과거의 역사는 과거 그들이 사용하지 않은 용어로 그들을 규정하기도 하고 과거 그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말로 그들을 규정하기도 합니다. 우린 너무나 쉽게 철학이란 말로 이황이나 이이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철학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죠? 뭐 이 정도를 그냥 넘어갑시다. 그런데 오캄과 같은 사람을 중세 철학자고 합니다. 그런데 오캄은 자신을 신학자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99.9%입니다. 그의 사상이 가장 잘 녹아든 <명제집>이 신학적 물음과 답으로 가득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철학이 사용되어도 말 그대로 신학적 고민을 위하여 철학이 사용되었지 오캄은 스스로 철학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주해한다 해도 그는 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궁리한 것입니다. 결국 그 역시 신학적 고민을 위하여 사용하기 위한 토대 다지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을 주해했다고 그를 철학자로 부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논리학 대전> 역시 이미 그 시작에서 분명히 하였듯이 신학을 위한 예비 단계를 위한 작품이지 순수한 논리학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토마스 아퀴나스나 둔스 스코투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신학부 소속의 신학교수이거나 신학부를 수료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세는 엄밀하게 철학과가 독립된 학과로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학자들의 사상을 수 백년이 지나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 신학자들의 사상 혹은 애씀을 철학이란 이름으로 기억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오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철학자가 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도 매우 진보적인 철학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오캄은 신학자이지 철학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입니다. 지중해 연안 철학의 젓 공간은 생활 속 벗과 더불어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바로 그곳에서 이루어졌지요. 소크라테스는 어느 건물 속에 들어가 등록금을 받고 일정 커리쿨룸을 두고 학위 과정을 완성하기 위해 철학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산파술이란 것이 가르친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더불어 진리를 향하여 궁리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공간 속에서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궁리한 것이죠. 그리고 각자의 답을 저마다 만들어내었습니다. 시험을 친 것도 아니고 학위 논문을 적은 것도 아니죠. 그런데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죽습니다. 그냥 잘 살아보자 했는데 죽은 것이죠. 플라톤은 이제 삶의 공간에서 철학하지 않고 어떤 특정의 장소로 들어갑니다. 아카데미아입니다. 하지만 아카데미아 역시 지금의 대학과는 아주 많이 다릅니다. 학위 과정을 위한 곳도 아니고, 시험을 치고 단계를 높이기 위한 곳도 아니었습니다. 철학은 여전히 어떻게 참으로 행복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은 신학의 수단도 아니고 의학이나 법학의 수단으로 고민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중세에 이르자 서유럽의 대학에서 철학은 대학이란 공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학문이라곤 하지만, 수단으로의 학문입니다. 가장 철학적 고민을 많이 하는 중세 대학의 인문학부는 사실 독립된 학부가 아니라, 신학, 의학, 법학을 위한 예비학부였습니다. 상위 학문을 위한 하위 학문, 특수 학문을 위한 보편 학문, 아래 있다는 의미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된다는 의미에서 아래 있는 의미의 하위 학문, 그리고 무엇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그 자체를 다룬다는 형이상학과 같이 보편적인 학문을 다루는 학문 그것이 바로 철학이었습니다. 철학 그 자체를 위하여 철학을 한 이들은 찾기 어렵고 대체로 철학은 대학의 상위 학부를 위한 학문이었습니다. 대학은 신학자. 법학자 그리고 의학자의 공간이었습니다. 철학자의 공간은 아니란 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읽은 어떤 분이 그 책은 너무 신학적이라 철학을 경험하기 힘들다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신학' 대전이니 '철학' 대전이 아니잖아요. 신학생을 위한 신학 책이지 철학을 공부하려는 이를 위한 철학책이 아닙니다. 철학을 의도로 쓰지 않았지만 그냥 훗날 연구가들이 철학의 고전으로 읽은 것이죠. 몇몇 그리스도교의 세례가 강했던 연구가들에 의하서 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라는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것도 사실 철학의 일은 아닙니다. 철학은 신앙 없어도 가능합니다. 마르크스도 가능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가능했고 말이죠. 신앙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현대 철학자들은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시도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실 철학사의 많은 논의는 그냥 대단하다 해서 대단한가 보다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중세 철학의 성과가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니 재미나지 않아요. 그것은 철학자의 일이 아니라, 신학자의 일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해가 갑니다. 그들은 스스로 철학자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신학자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철학의 쓸모는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학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죠. 신앙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철학이란 말이 고대에 있었고 중세에 있었고 근대에 있지만 그리고 현대에 있지만 그 철학의 자리는 조금씩 다르고 그 자리에 따라서 철학의 존재 방식도 무지하게 많이 다릅니다. 중세의 철학은 신학의 수단이지 그 스스로 삶을 궁리하진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중세 철학자, 특히 중세 스콜라 철학자는 대부분, 아니 거의가 신학자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중세의 철학은 그 신학자의 신학함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이란 것은 지금 21세기 우리가 형이상학이란 말로 기대하는 것과는 아주 많이 다를 것입니다. 적어도 비슷해 보여도 그 목표, 그 지향점은 아주 많이 다를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히 말이죠. 오캄의 논리학이란 것도 현대 분석 철학 혹은 언어 철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목표로 삼는 것과 다른 목료를 가질 것이다. 이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도 형이상학자들은 보편 논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삼위일체나 교회론 등을 위하여 보편 논쟁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비록 보편 논쟁이란 말은 같지만 그리고 아주 유사해 보이는 것을 두고 궁리하지만 중세 보편 논쟁과 현대의 보편 논쟁은 아주 많이 다르다. 하나는 신학자의 고민이고 하나는 철학자의 고민이다.

철학이란 것이 혹은 보편 논쟁이란 것이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같은 이름으로 중세와 현대에 존재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유사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서로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것에 대하여, 서로 다른 환경에서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기에 하나의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지 그 이름이 중세 철학과 현대 철학의 철학과 보편 논쟁에 단일성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대칠 토마스철학학교장 겸 오캄연구소장

전주 전동성당 부근 커피 가게에서 . 사진 유한결 (C)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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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홀로 외로운 시대, 홀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불행한 시대, 정말 제대로 행복한 것을 무엇인가를 예수의 <주님의 기도>와 행복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묵상 모임집이다. 더불어 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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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모두가 홀로 누리며 홀로 높아지려는 시대, 그 아집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아프고 힘든 시대, 참된 더불어 행복하게 위한 더불어 있음의 철학과 더불어 있음의 신학을 궁리해 본다. 우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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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대한민국 철학사>

 

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이 책은 이 땅에서 우리말 우리글로 역사의 주체인 우리가 우리 삶과 고난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한 결과물이 한국철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변방에서 중국을 그리워하며 한자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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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신성한 모독자 - 교보문고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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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일반 형이상학 입문>

 

일반 형이상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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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철학의 과정>

 

철학의 과정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논리는 왜 철학에 필요한가 그리고 존재론과 철학적 신학에 이르는 간단한 개론적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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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의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다>

 

야고보와 요한을 만나다

<야보고서>와 <요한1서>를 통해 더불어 있음의 신학적 의미를 돌아보려 한다. 신은 이런저런 복합한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파악되어 우리 사람의 머리 속에서 생명력 없는개념으로 구속되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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