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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강학회

우리 가운데 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 (더불어 신학의 요한 1서 읽기 19)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3. 7.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더 위대합니다. 하느님의 증언은 바로 당신의 아들에 대해서 증언하신 것입니다.

10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이는 그 증언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 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그는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에 대해서 증언하신 그 증언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은 당신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2 그 아들을 모시는 이는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는 자는 생명을 지니지 못합니다.

13 하느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써 보내는 것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5장 9-13절)

나는 죽습니다. 죽지 않고 어찌 살까요.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죽는데 너무나 당연히 죽어서 사라지는데 죽지 않는다 하니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가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죽습니다. 믿음이 좋은 이들도 모두 죽었습니다. 굳이 신비에 대하여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자기 내어줌'의 '더불어 있음'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말해 보려 합니다. 잡초 하나는 죽습니다. 당연히 죽습니다.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죽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먹히기도 하고 누군가의 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정말 사라져 버린 것이고 정말 죽어 버린 것이죠. 그런데 어찌 보면 자기 내어줌으로 잡초는 태양과 물과 바람을 만나 또 다른 생명인 꽃이 된 것일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면 꽃은 그저 하나의 꽃이지만 사실 꽃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 자신을 내어줌으로 더불어 있는 또 다른 작은 '우리'입니다. 그 우리 가운데 공기가 자기 내어줌을 그만둔다면 꽃은 꽃이 되지 못합니다. 태양빛이 자기 내어줌을 그만둔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빗물이니 이슬이니 물들이 자기 내어줌을 그만둔다 해도 꽃은 꽃이 되지 못합니다. 꽃은 그 모두가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있어 가능했습니다. 물도 잡초도 태양빛도 더는 보이지 않고 사라졌지만 사실 죽지 않고 꽃이란 또 다른 우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꽃을 보며 내가 웃습니다. 그 꽃 주변으로 다시 벌과 나비가 모입니다. 그 꽃이란 작은 우리도 그만두지 않고 다시 자신을 내어줍니다. 우리에게 내어주고 벌에게 나비에게 내어줍니다. 마지막엔 스스로 또 다른 무엇의 거름이 되거 자기를 내어줍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 한 사람 구원되어 천국에 가 영원히 사는 것 같지만 사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나라는 이기심이나 욕심이나 아집으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닙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움직이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어찌하면 더 사랑할까 그것을 궁리하고 그것을 걱정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자기 내어줌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있는 것을 성가시다 하지 않는 그러한 세상입니다. 경쟁이 능력인 곳이 아니라, 조화가 힘이 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자기 내어줌으로 살아간 한 사람은 죽어도 우리 가운데 희망으로 죽지 않습니다. 

과거 동학농민혁명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양반과 일본의 총칼에 맞서 싸울 때,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돌아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죽어갈 것을 다짐하고 나섰습니다. 배신하지 않고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들은 정말 죽어 사라졌습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 희생은 이후 3.1 혁명으로 이어지고 다시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며 지금 우리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조리에 대항하여 싸우던 그들 하나하나는 죽어 잊혔지만 그들은 죽지 않고 우리 역사 가운데 여전히 살아 우리가 되어 있습니다. 전태일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그는 자신의 월급을 더 달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자신도 가난했지만 더 가난하고 힘든 소녀 여공의 아픔을 그냥 둘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나 하나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갈 그 희망의 세상을 향하여 자기 내어줌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몸에 불을 붙임으로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전태일은 죽었지만 전태일은 지금도 죽지 않았습니다. 이 땅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홀로 삶의 세상, 경쟁으로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이 세상에서 신앙은 자기 내어줌으로 더불어 삶의 세상을 향하게 합니다. 그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홀로 천국에 가겠다는 것이 천국이 아닙니다. 자기 내어줌의 더불어 삶으로 이 곳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겠다는 삶이 신앙입니다. 그 삶을 사는 이들이 신앙인입니다. 나 하나의 죽음과 삶보다 우리 모두의 죽음과 삶을 생각하며 우리 가운데 나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가운데 나 하나가 아닌 우리로 죽지 않은 것이 신앙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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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칠, <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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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더불어 우는 철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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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철학사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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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성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철학자 13인이 일으킨 파문과 모독의 일대기를 다룬 『신성한 모독자』. 중세에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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