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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무법적 정의로 정의로운 공동체... (테드 W. 제닝스, <무법적 정의>, 박성훈 옮김 (도서출판 길, 2018))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4. 1.

''무법적 정의'

'정의'라는 말의 수식어가 '무법적'입니다. 참 어색한 구조입니다. '무법적'이란 말의 영어 원어는 Outlaw이다. 법의 밖이란 식으로 읽히지요. 그런데 법의 밖 정의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법의 밖에 정의가 있긴 한 것일까요? 하지만 테드 W. 제닝스가 이야기하는 그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Outlaw Justice'라는 제목, 즉 '무법적 정의'라는 제목은 이 책의 특징을 정말 잘 드러낸 탁월한 제목이란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거 조선을 생각해 봅시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정의는 성리학 혹은 주자학에서 이야기하는 정의의 맥을 같이 합니다. 어떤 정의로움을 생각할 때 항상 당시 지배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성현의 말씀, 즉 공자, 주자, 이황, 이이 등의 철학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정의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때론 조선이란 배경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민초들이 고통 속에 있다 해도 양반의 성리학적 정의, 즉 성리학이 허락하는 법의 틀 안에서 생각되는 정의에 속하지 않는다면 혹은 배제된다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들에게 힘겨운 현실이라 하여도 정의로운 조선을 이루는데 그들의 아픔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들을 걱정하고 그들의 아픔과 더불어 있지 않는다 하여 정의롭지 않은 것도 아니 말입니다. 어쩌면 조선의 약자들은 조선이란 법적 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정의의 틀을 제공하는 성리학의 고민 밖에 있는 존재들일뿐이었습니다. 법의 정의밖에 있는 존재란 말입니다. 고정된 철학은 그 처음이 아무리 이타적이라 해도 어느 순간 어느 집단의 기득권을 위한 법을 제공하게 되고, 정의는 그렇게 그 법 속에 기생할 뿐이게 됩니다. 이 땅 '동학'으로 일어난 민중은 성리학이 만든 법적 정의에 반발하였습니다. 그리고 법의 틀 밖에서 정의를 외쳤습니다. 불법 정의라고 할까요. 정말로 조선의 공권력은 그들을 불법적인 존재로 탄압했습니다. 어쩌면 이 땅의 동학 혁명도 그런 의미에서 무법적 정의와 같은 흐름일 수 있겠습니다. 법의 밖에서 정의를 외치는 이들은 준법정신으로 정의를 구현하지 않습니다. 법의 준수가 아닌 정의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제닝스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대표적 인물인 바오로(바울)을 읽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그 '무법적 정의'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기존 종교인 유대교의 법과 유대교의 법 밖에 있는 이방인의 법, 이 두 가지 법적 질서 속에서 법을 준수하며 이루어지는 정의가 아닌 이 두 법 밖의 정의, 무법적 정의를 이야기합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에게도 법 밖의 존재이고, 로마제국에게도 법 밖의 존재들이었지요. 이 두 법 질서 밖에서 정의를 이루어간다는 것은 이 두 법이 제공하는 법조문을 따라 충실히 살아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메시아적 정의의 요청에 부응하는 정의로운 자들의 정의를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바오로가 자신의 평생 이루고자 한 정의로운 공동체는 법을 잘 지키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가 이루고자 한 정의로운 공동체는 법의 밖에서 메시아적 정의에 부응하는 그러한 정의로운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 무법적 정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그리스도교인만의 공동체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이란 법이 정의를 구속하는 그러한 공동체도 아닐 것입니다. 무법적 정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모두를 위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런저런 신학 조문으로 소수자들을 부정한 자로 만들지 않는 그러한 공동체 말입니다.

그 내용을 길게 적을 수는 없고 참 재미나고 이런 저런 생각할 것을 많이 제공하는 책입니다. 제주 해군기지에서 그리고 성주 샤드 기지에서 그리고 이 땅 현대사에 등장하는 수갑 찬 그리스도교인의 모습들이 머리를 스칩니다. 통일과 민주주의의 운동에 앞장서며 스스로 범죄자가 되셨던 문익환 목사님의 그 공동체도 무법적 정의로 정의로운 공동체는 아니었을까요? 이번 재판에서도 범죄를 저지른 자로 판결받은 제주 해군기지 송강호 목사님이 꿈꾸는 공동체도 바로 무법적 정의로 정의로운 공동체는 아니었을까요? 법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그 정의를 위하여 스스로 법의 밖에서 법을 어긴 자가 되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그 정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여간 한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ㅎ

테드 W. 제닝스, <무법적 정의>, 박성훈 옮김 (도서출판 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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