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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유대칠

서재 이야기 2 - 나의 일상이 머무는 소란스러운 공간

by Daechilyus Ambrosius Magnus 2021. 4. 7.

저는 남들이 보지 않는 조용한 곳에 홀로 앉아 조용하게 책을 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제가 앉아서 글을 읽고 쓰는 오캄연구소도 그렇게 조용한 것이 아닙니다. 창문을 열어 두고 있어서 밖으로 차가 다니는 소리도 들리고 우퍼 스피커로 제법 크게 한국방송 클래식 음악 채널을 틀어 두고 있어서 음악 소리도 제법 크게 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연구실의 이웃에 있는 방앗간의 소리도 나고 연구실 바로 앞 국숫집을 찾은 이들의 소리도 들립니다. 한마디로 그렇게 조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항상 그렇게 조용하지 않은 곳 그리고 그렇게 은폐되지 않은 곳에서 연구를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과거 오랜 시간 위드 교회에서 운영하는 위드 카페에서 연구 생활을 할 때에도 저는 카페 한쪽 구속에 앉아 글을 적었습니다. 저의 책 가운데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그곳에서 적었고 <신성한 모독자>의 대부분은 그곳에 앉아 마무리했습니다. 물론 시간상 모든 글의 최후 순간은 집에 있는 저의 서재에서 마무리했지만 저의 서재 역시 음악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연구 생활하는 것을 좋아해서 서재도 저의 오캄연구소도 창이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창 밖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전남대에서 제가 앉아 연구하던 곳은 인문대 건물 1층의 공간이었습니다. 학부생들이 가득히 앉아 책을 보는 곳이죠. 도서관 같이 조용하지 않은 곳이며, 오가는 이들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이 너무 많이 앉을 곳이 없으면 도서관 1층에 있는 커피 가게에서 책을 보거나 읽거나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그곳도 결코 조용한 곳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철학사>의 많은 부분은 지금은 사라진 대구 반월당 영풍문고 안에 있던 달콤 커피 가게에서 작성했습니다. 매일 그곳은 2년 동안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공무원 영어 과외 알바도 하고 저는 중간중간 저의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조용하게 연구를 이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부분 남들이 보면 제법 많이 시끄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처음 토마스 철학학교가 한 달 월세 10만 원에 얻은 대구 범어동의 한 건물 안 수위실이 생각납니다. 지하에 노래방이 있었고 옆 방은 항상 욕설 가득한 이들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2-3편의 논문을 적었고 모두 학술지에 투고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아주 조용한 곳에서 조용하게 연구하는 체질은 아닌가 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거 하라 저거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런 배경 속에서 연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매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불편해도 저에게 가장 익숙한 곳에서 가장 익숙한 형태를 유지하며 연구를 이어갑니다. 한마디로 참견을 무지하게 힘들어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남에게도 참견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굳이 제가 변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저도 그러한 것을 힘들어하니 말입니다. 그런 참견이 없다면 사실 어디든 저의 연구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참견이나 이런 저런 간섭에는 매우 민감하고 힘들어하지만 대체로 물리적인 조건들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연구하는 노동자로 참 유리한 점이지요. 시끄러워도 상관없고 그렇게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밖과 아예 단절된 듯한 분위기를 싫어합니다. 감옥 같아서 힘들어합니다. 

지금도 밖에선 이런 저런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 가운데 제가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과거 위드 카페에서 연구를 하면 좌우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이들이 그곳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일상 속 열심들 속에 저의 열심히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방앗간 소리도 식당의 소리도 그리고 이런저런 일상 속 열심들의 소리도 좋습니다. 그 소리들 가운데 라디오를 들으며 연구하는 저도 참 편하고 좋습니다. 

저의 서재는 그렇게 특별한 세상의 어떤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일상을 보내는 곳과 같습니다. 그분들의 일상 속 노력들이 흔히 시끄럽게 역동하듯이 그렇게 나의 노력이 시끄럽게 역동하는 곳입니다. 

유대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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