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바보와 이치를 따지는 것은 잠자는 사람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가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그는 "뭐라고요?" 하고 말할 것이다.
11 죽은 사람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라. 빛을 떠났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라. 슬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슬픔은 덜해도 좋다. 그는 안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에게는 삶이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이다.
12 죽은 사람을 위한 애도는 칠 일이면 되지만 어리석은 자와 악인의 일생은 모든 날이 초상날이다.
13 어리석은 자와 더불어 오래 말하지 말고 미련한 사람과 함께 걷지 말아라. 어리석은 자를 경계하여라. 네가 곤경에 빠지기 쉽고, 그에게 물들어서 몸을 더럽힐 수도 있다. 그를 멀리하여라, 그리하면 안식을 얻게 되고 그의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지도 않으리라.
(<집회서> 22장 10-13절)
어리석은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과 고집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에게 아무리 소중한 지혜를 이야기해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예 듣지 않습니다. 무엇이 자신의 귀를 울렸는지 그의 영혼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의 아집 가운데 남을 쉽사리 비난하고 조롱합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의 옆에 있으면 조심해야 합니다. 그가 몸을 털 때 난 조롱과 무시의 힘겨운 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아집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자신도 죽은 듯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고정되어 버렸다는 것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아집은 살아도 죽어 있게 만듭니다.
‘아집(ātma-grāha)’이란 말은 원래 불교 용어입니다. 변하지 않은 실체적 자아가 있다는 고집입니다. 이에 따라서 표준과 기준도 없이 자기의 의견에만 집착하여 고집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결국 사람의 고통도 바로 그 아집으로 인하여 일어난다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나를 아프게 합니다. 참된 세상을 보지 못하고 거짓을 참된 것이라 믿게 만들고, 그 가운데 살게 만든다. <집회서>의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말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지혜의 말씀이 바로 옆 자리에 다가와 자신과 더불어 있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살아있지만 매일의 삶이 죽음의 삶인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입니다. 매일의 일상이 초상 날인 사람들의 삶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입니다. 지금 <집회서>에서 하느님은 ‘슬기’보다 ‘고집’과 ‘아집’에 빠진 이들을 경계하며 그리 살지 말라 우리에게 일러두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이러한 경계 앞에서도 하느님의 지혜를 보지 못합니다. 이 글과 말에 담긴 지혜를 보지 못합니다. 그에게 다가가 읽히고 들려도 그는 그만을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은 ‘나’만을 생각합니다.
돌아봅시다. 과연 나는 얼마나 ‘지혜’로 운가? 작은 지식에 빠져 지혜 없이 사는 것은 아닐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경멸하며, 그 경멸의 말재주로 우쭐거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아집 속에서 함부로 남에 대하여 비방하며 우리의 하나 됨을 부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돌아봅시다.
나의 욕심으로 가득한 삶에 하느님의 말씀이 들릴까? 양심의 울림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움직이고 있을까? 십자가의 수난에 담긴 그 지혜의 말씀이 나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을까? 어쩌면 나의 삶 동안 쉼 없이 울리는 지혜의 말씀에도 나는 하느님께 “뭐라고요?”라며,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나의 기쁨과 소유를 위한 답을 달라 빈정거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닐까? 나는 나를 생각해 봅니다. 과연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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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권은 저의 칼럼 모음집과 묵상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두 권의 책은 저의 저서입니다. 더불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대칠, <복음이 전하는 더불어 삶의 행복> (이 책은 링크된 '부크크 서점'과 '예스 24' 그리고 '교보' 사이트에서만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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