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러나 지혜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다르게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지혜가 누구의 선물인가를 아는 것이 현명의 표시이다. 그래서 나는 주님을 향하여 간청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이렇게 기도하였다.
(<지혜서> 8장 21절)
똑똑해지기도 힘들지만 슬기로워지기는 더욱더 힘듭니다. 나 하나 열심히 노력하면 똑똑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너와 더불어 있지 않으면 슬기로워질 수 없습니다. 홀로 있어서는 슬기로울 수 없습니다. 더불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슬기로워집니다. 똑똑한 사람들 많습니다. 공부 잘해서 시험도 잘 치고 높은 자리도 더 빠르게 올라갑니다. 그러나 부럽기는 해도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홀로 잘 먹고 잘 살아서 부럽지만 더불어 살지 못해 존경을 받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을 존경하진 않으니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똑똑한 사람이 되길 원하실까요. 슬기로운 사람이 되기 원하실까요. 예수께서는 우리가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하실깡.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하실까요. 예수께서는 홀로 높아지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일까요? 더불어 있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일까요? 교과서의 답처럼 우린 예수께서 정말 원하신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데로 살지 않습니다. 지식은 있지만 그렇게 살진 않습니다. 그만큼은 똑똑한데 슬기롭지는 못합니다.
독일에서 신학 박사를 하고 똑똑한 사람이 그 똑똑함으로 홀로 높아지지 않고 제주 강정 마을, 그곳에서 불의한 세상과 다투며 있습니다. 더불어 평화를 이루자며 있습니다. 그러다 험한 세상, 온갖 힘겨운 일들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당당하게 더불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그 평화의 길을 힘들고 힘들게 가고 있습니다. 권력 좋아하고 돈 좋아하는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힘든 공부하고 박사까지 된 똑똑한 사람이 그렇게 아집과 부조리의 세상에선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삶이 슬기로움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똑똑하지만 슬기롭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법조인이나 의사니 종교인이니 정치인이니 교수니... 다들 얼마나 똑똑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슬기로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성서학으로 유학을 하고 돌아와 교수 하던 사람이지만 불의한 세상을 향하여 분노하던 문익환 목사가 생각납니다. 어려운 공부를 한 똑똑한 분이십니다. 그냥 그 똑똑함으로 교수하며 홀로 잘 살아도 그만인데 그는 더불어 모두 평화롭게 살자며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길을 가며 그는 웃었습니다. 수갑을 차고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지금 독일에서 신학 박사를 하고 돌아와 그 똑똑함으로 자기 한 사람 잘 살 것을 궁리하지 않고 더불어 모두 평화롭게 살자며 고난의 길을 가는 송강호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그 똑똑함으로 홀로 잘 살아도 그만인데 말입니다.
지혜는 쉽지 않습니다. 지혜는 하느님을 향한 걸음이란 생각을 합니다. 지식은 하느닐을 향한 걸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지식으로 독사의 자식이 되어 사람들을 괴롭힐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는 더불어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는 하느님을 향한 바라봄이란 생각을 합니다.
문익환 목사에서 진 우리 현대사의 큰 빚을 지금은 송강호 선생님에게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주 강정, 저 아름다운 곳을 저리 아프고 아픈 곳으로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똑똑함입니까. 송강호 선생님이 법정에서 죄인이 되셨다고 합니다.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참 많은데... 슬기로움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1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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