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과 노비 그리고 기생에게 '너'라며 다가가 만나지 않는 철학, 우리를 이루지 못한 철학, 더불어 사는 이를 무시하고 중국을 그리워한 철학은 절대 '뜻'있는 철학이 될 수 없다. 살아 있는 철학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다지려는 한국철학은 민중과 더불어 우리 가운데 아프고 힘든 이 시대의 고난에 너라며 다가가 만나려는 철학이다. 그 철학의 역사를 다루고자 한다. 더불어 있음의 철학으로 대한민국의 철학 그 철학의 삶을 돌아보려 한다." (유대칠, <대한민국 철학사> 41쪽)
너라며 다가가는 철학, 이 시대의 아픔에게 너라며 다가가는 철학, 너라며 이 시대 고난의 주체에게 다가가는 철학, 바로 그 철학이 필요하다. 그 철학이 우리를 우리되게 하고 나를 나되게 한다. 그렇게 우리되고 나되면 그저 고난의 주체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 역사의 주체가 되려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나라며, 이제 우리의 역사 나의 역사는 우리와 나가 주체가 될 것이라며 나설 것이다. 외국의 철학을 그리워하며 있지 않고 말이다. 남의 답을 나의 답이길 바라며 살아가지 않으며 말이다.
언제까지 착한 독재자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고난의 주체가 이 시대 역사의 주체가 되어 나서야 한다 착한 독재자도 독재자이고 무능한 독재자도 독재자다. 그에게 고난의 주체가 당하는 그 고난은 남의 고난이다. 더 이상 그 고난이 남의 고난이 아닌 이들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고난의 주체들이 이런저런 실수에도 쉼 없이 시끄럽게 역사를 끌고 가야 한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말이다. 문익환과 함석헌은 수동적인 민중의 선동꾼이 아니었다. 이미 광장에 모여 분노하는 그 민중의 입이 되어 분노하였다. 지식인이라면 철학자라면 신학자라면 그 정도라도 충분히 민중과 더불어 역사의 주체가 됨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론 속에 민중을 계몽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부조리 속 분노하는 민중의 혀가 되고 입이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단 말이다.
민중을 무시하지 마라! 결국 해결의 시작과 끝에 있는 것은 민중이다. 그때 역사는 건강해질 것이다. 지금도 고난의 주체가 역사의 주체로 나아가는 그 길, 우리 민중은 나아가고 있다 믿는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어둠 가운데 싸우다 사라진 그 많은 민중들이 동학을 가능하게 했고 3.1 혁명을 가능하게 했으면 이 땅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제주 강정에서 그리고 성주에서 그 민중들은 스스로에게 지워진 그 고난의 주체, 그 힘들고 고단한 길 속에서 역사의 주체가 되기 위한 힘겨운 걸음을 걷고 있다.
유대칠
2021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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