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하는 말이다. 철학은 똑똑해지기 위해 하는 학습 행위가 아니다. 물론 학습이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철학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슬기로움이다. 슬기로움을 깨우치는 것이 철학이다. 그 슬기로움을 사랑하는 것이 철학이다. 사랑은 하나가 되고자 한다. 강제적 소유가 아닌 둘이 하나 됩니다. 슬기로움을 사랑하는 주체의 삶, 그 삶은 그렇게 결국 슬기로움이 녹아들어야 한다. 철학의 모든 슬기로움은 삶이 되어야 한다.
굳이 대학원을 나오지 않아도 굳이 유학을 가 유명 학자에게 배우지 않아도 철학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고전문헌이나 고전철학의 문헌을 조금 더 제대로 읽겠다고 대학원을 가고 유명 학자에게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종국의 목표라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그렇게 배운 것이, 그렇게 배운 똑똑함이 결국 삶 속 슬기로움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그래야 철학의 목표를 이룬 것이고, 철학의 한 여정이 된다.
철학이 사는 방법
철학은 그저 홀로 살지 못한다. 그 철학의 지혜가 사람들에게 뜻으로 다가갈 때, 그때 철학은 그들과 더불어 살게 된다. 그저 홀로 슬기롭다 아무리 소리쳐도 그 철학의 슬기로움, 그 지혜가 사람들에게 뜻으로 다가가 더불어 있지 않아면 소용 없다. 지금 우리네 철학이 사람의 삶에 뜻으로 다가가 더불어 사는지 돌아봐야 한다. 어느 유명 철학자의 철학대로 살지 않는다고 훈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남이 아프든 말든 자신의 지식이 다른 이에게 뜻으로 다가가든 말든 학습하며 살 수 있다. 자유다. 그러나 그건 철학이 아니다. 아무리 유명한 대학자라도 해도 그런 철학 아니다.
철학의 본질은 대학이나 학위가 아니다.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싯다르타도 그들 철학의 공간은 대학이 아니었고 그들의 슬기로움은 학위로 평가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철학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뜻으로 다가가기에 그들의 철학은 살아있다. 철학의 삶은 그와 같다. 더불어 있어야 한다. 뜻으로 다가가 더불어 울고 웃어야 한다. 그렇게 삶 속 지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철학자는 바로 그러한 지혜, 바로 그러한 슬기로움을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궁극의 목적이다.
오늘 나의 철학을 돌아본다.
유대칠 씀
2022년 0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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